엎드려 잔 게 아니고 아예 누워 쉬었어요.

일상의 고찰 8: 도서관에서 하루 보내기

by 게을러영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티는 건 거의 사투이다.

어제도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을 와서 'in Boston' 시리즈를 쓰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며칠 동안 막힌 부분이 술술 써졌다.

오~ 개꿀!


오늘 아침에도 에어컨을 켤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 결국 노트북과 커피를 싸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전기료도 아끼고, 환경도 생각하고, 공부도 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백만 가지의 이유 속에서 최고로 빛나는 이유는 '자존감 뿜뿜'이었다.


나, 도서관 다니는 녀자야~!


노트북과 어댑터 그리고 몇 가지 개인 사물을 들고 다니는 건 불과 10분의 도보여도 이런 날씨에 좀 힘든 거리이다. 귀가 후 땀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도서관을 다녔지만 하루 종일 있었던 적은 최근 10년간 전무이다.

잠깐씩 들러 도서 대출과 반납을 했고, 앉아서 독서를 한다 해도 반나절 정도가 최대였는데 어제는 정말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다 보니 도서관에 있는 편의시설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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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물함이다.

100원의 동전을 넣고 문을 개폐하는 구조라 신용카드조차 안 들고 다니고 스마트폰의 00페이에 모든 신용카드를 심어 놓은 나로서는 100원의 동전이 있을 리가 만무였다.

그래서 조심스레 사서님께 동전을 꿔 줄 수 있는지 여쭸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장기로 사물함을 대여할 수 있으니까 신청서를 작성하면 아예 열쇠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나의 사물함을 얻고는 그곳에 개인 사물을 넣어두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게 바로 소소한 행복이지! 암 그렇지.. 공공의 복지가 바로 이런 거지.. 세금 내는 보람 있네..'

우습게도 사고의 확장은 끝도 없었고 그 끝은 '너무 갔네...'의 자조와 피식 웃음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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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열린 카페이다.

카페가 지하에 있는 줄은 알았지만 크게 냄새가 나지 않는 정도의 음식이라면 얼마든지 개인이 준비하여 온 것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하여 오늘 아침 준비해 온 샐러드와 오트밀빵 그리고 커피를 맛있게 먹었다.

커피와 음료 약간의 간식을 팔기도 하는 곳이라 다음에는 커피를 사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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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커뮤니케이션과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도서관 밖에도 꽤 많이 있다.

허리와 어깨에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될 수 있으면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같은 자세가 근육에는 최악이기에 스마트워치에 설정을 하여 1시간만 안 움직이면 스마트워치가 경보를 준다.

차디찬 에어컨 바람과 오랫동안 앉아있는 자세로 경직된 근육을 풀기 위해 내가 애정하는 건물 밖 테라스로 나간다. 반쯤 그늘이 덮여 있고 초록이 함께 어우러진 테라스는 에어컨으로 차디차게 언 몸을 좀 녹이고 스트레칭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또 10여분 정도 산책도 한다. 공원과 연결되어 운동 기구들이 꽤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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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장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장소이다.

도서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들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바른 자세로 공부하거나 독서를 하는 곳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나는 일단 심각한 구세대임을 먼저 고백한다.

물론 도서관의 유휴공간에서 각종 강연회라든지 도서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참여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도서관의 다양한 활동이라고 여기지, ''을 위한 장소라고는 인식되지 않기에 저런 공간은 문화적 쇼크를 받을 만했다.


예전 근무했던 학교가 '도서관 연구학교'에 선정되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학교도서관에 이런 소파나 쿠션을 가져다 놓는 계획을 세웠는데, 관리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담당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모든 학교에 유행처럼 번지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상전벽해의 느낌이다.

첫 번째 사진의 장소는 복도 맨 끝에 위치한 곳으로 충분히 휴게의 장소로 짐작될 수 있는 곳이다.

단지 입식이 아닌 좌식으로 누울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공간은 바로 열람실 내의 모습이다. 열람실 한쪽 구석에 저렇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 공부와 쉼을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발상이 참 유쾌하였다.

요즘 십 대들은 저 자유로운 공간에서 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휴대폰을 보거나 심지어 자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학생, 뭐 하는 거예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라며 도서관 관계자나 오지랖 넓은 어른이 와서 나무랄 텐데 지금은 그 누구도 나무라거나 제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런 편한 쿠션을 비치하여 쉬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나도 어제 바로 저 공간에서 좀 누워보았다.

물론 큰 용기가 필요했다.

민망함에 눈을 감고 책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기말고사 시즌이라 오후만 되면 물밀듯이 들어오는 중고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 백색소음 역할을 해주었다.

잠깐이지만 그게 얼마나 편안한 휴식과 용기에 대한 보상이 되던지!


학생 때를 기억해 보면,

학교도서관이든 공공도서관이든 심지어 돈을 내고 한 달씩 임대했던 독서실이든 누워 자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항상 잠이 쏟아지던 그 시절, 졸음을 이기지 못할 때 결국 책을 괴고 엎드려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것도 눈치 보면서 자기 일쑤였는데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잠이 깨고 나서 절대로 바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엎드려 잔 자세에는 침을 흘린 자국이 남는다.

바닥에도 남고 내 얼굴에도 남는다.

그 흔적들은 샅샅이 없애지 않고 일어났다가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이다.

콧대 높은 여고생으로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십 년 전의 학창 시절과 비교하여 도서관은 아주 많은 변화를 하였다.

그때의 도서관은 '편안함'보다는 '엄숙함'을 요구한 공간이었다.

사람도 슬리퍼 찍찍 끌며 만나 아이스께끼 하나 물고 떠드는 친구가 제일 편하듯

공간도 문턱이 낮은 곳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미국 여행동안 몇 개의 도서관을 탐방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창의적인 놀이 공간으로 또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열린 쉼터로 변신해 있었다.
책상과 의자마저 획일화되지 않고, 공간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놓여 공간의 개성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었다.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네모난 틀 안에서는 결코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곳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이제 도서관은 '공부의 공간'을 넘어 '즐거움의 공간'으로,
'엄숙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와 여유의 놀이터'로 변모했다.

일찍이 빌 게이츠가 "나를 키운 건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라고 말했듯이,

나 또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멋지게 나이들 수 있게 하는 공간은 동네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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