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도서관 이용기
지금의 거주지에서 18년째 살고 있다.
입주 때부터 살고 있는 사람이 이제 우리 라인에서 딱 세 집뿐이다.
아이들이 다 독립한 지금에는 넓게 느껴져서 좀 더 작고 깨끗한 새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주변이 다 맘에 든다.
등산을 좋아하는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산이 있고, 그것보다 더 앞서는 이유는 도서관이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요즘같이 폭염으로 시달릴 때는 도서관이 최고다.
집에서 혼자 에어컨을 켜고 있을 때 느껴야 하는 죄책감도 없고, 전기세의 압박도 없고, 무엇보다 이곳에 오면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쓴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일단 기말고사 시즌 오후에는 학생들로 붐빈다. 시험공부를 핑계로 온 학생들 중 제대로 앉아 열공하는 아이들보다 휴게실이나 복도 좌석에서 스마트폰 삼매경이나 친구와 잡담하는 녀석들이 더 많다.
그래도 도서관에 온 녀석들은 기특하다.
또한 예상밖의 사람들도 많다.
팔순 중반의 우리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 할머니가 아주 천천히 자리를 찾아 앉으셔서 '큰 글자 도서'를 읽는 모습은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어르신들 중에는 필사를 하거나, 어학 공부를 하는 분도 종종 보인다.
남자 어르신들 중에는 7~8종의 신문을 놓고 보는 분들도 상당수이다.
또 복도나 휴게공간에서 아예 코를 골고 주무시는 분도 계신다.
이 모습은 점심 식사 후에만 보이는 타임서비스이다.
그런 분들은 눈이 아파서.... 책이 눈에 안 들어와서.... 이런 핑계를 절대 대지 않는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은 다 옳다!
첫 그림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자리를 그린 것이다.
음악 감상도 할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버티컬을 올리면 공원의 푸르름이 그대로 투영되는 힐링 명당이다.
그러나 요즘은 노트북을 쓰는 관계로 일반 열람실 노트북 전용자리에 머문다.
처음에는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개관시간인 9시에 맞춰와서 저녁 먹을 때쯤 집에 갔는데, 이제는 저녁 먹고 다시 온다. 그 후 3시간 정도가 최고의 집중력이 발휘된다.
어차피 집에 있었으면 씻고 TV나 유튜브를 보고 있을 시간이라, 이 3시간은 보너스지만 본품보다 더 나은 양질의 사은품이다.
폐관 시간인 10시 언저리쯤 맞춰서 나오다 보면, 후덥지끈한 열대야가 계속될 때는 도서관 문을 나오자마자 안경에 서리가 낀다. 그러나 그 후덥지끈함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난 도서관에서 방금 나온 여자니까!
그것도 열공의 뿌듯함까지 함께 하니까!
역세권, 숲세권, 공세권처럼 도세권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히 도세권이 아파트 가격에 한몫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부동산 창문에 빼곡히 붙여있는 각종 0세권 중에 도세권이 으뜸이길 염원한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프리미엄이 최고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