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후 농사꾼으로 변신한 친구에 대한 찬사
주변에 퇴직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중에 아주 친한 두 명이 농사를 짓는다.
첫 번째 검은 봉지의 주인공은 작년에 명퇴하고 이제 농사 2년 차인데, 초보 농사꾼답게 자신의 농작물에 대한 신기함과 기쁨을 공유하고자 여기저기 나눈다.
자려고 누웠을 때 전화가 오기도 해서 내려가 받아온 적도 있다.
딸이 사줬다는 자수가 화려한 머릿수건을 쓴 그녀의 모습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내 곧 '하이디' 같다고 하니 하얀 목련처럼 환하게 웃었다. 반질거리는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였다.
원래 나한테 같이 정퇴(정년퇴직)하자고 종용했던 그녀가 작년에 소리소문도 없이 명퇴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딴 사람한테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러 전화를 했다.
".... 그렇지, 뭐... 언니.... 그렇게 되었어...."
이유를 묻던 내게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속내를 숨기던 그녀를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누구나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녀는 바로 공노에서 해방된 그다음 달인 작년 4월에 일을 저질렀다.
20년 전에 사놓았던 땅에 농막을 가져다 놓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막에 초대받아 가보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쉼터였다.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와 동거를 했던 그녀는 명퇴한 남편과 둘만 있는 그 공간에서 희희낙락하며 때늦은 신혼을 즐기고 있었다. 명퇴 후 24시간으로 늘어난 구순 시모와의 동거에 대한 해결책으로 찰떡이었다. 부부는 농막으로 출퇴근하며 고부의 숨구멍을 그렇게 틔웠다.
두 번째 농막 그림의 주인공은 벌써 5년 경력의 전문 농업인이다. (실제로 그녀는 농업인 자격을 인정받아 각종 혜택을 보고 있다.)
300평도 훨씬 넘는 땅을 혼자서 경작한다.
말이 300평이지 만약 나한테 그걸 혼자 하라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크기이다.
농막을 중심으로는 꽃밭을 조성하고 주변으로 농작물을 배치하였다.
그녀의 꼼꼼한 성격답게 모든 농작물들이 줄지어 있고 잡초는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풀이 나지 않도록 덮은 검은 비닐 위로 구멍을 내어 모종을 심는데 그 간격이 자로 잰 듯하다.
또 꽃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답게 정원의 꽃과 나무들이 겨울을 제외한 세 계절을 풍부하게 해 준다.
시기가 다른 개화 때마다 그녀는 실감 나는 접사(接寫)로 우리의 감성을 업데이트시켜 준다.
그녀의 농작물은 아주 실하다.
실한 농작물을 가끔씩 톡방에 올려 따 가라고 한다.
그것을 핑계로 모여 고기도 구워 먹고, 수다도 떨면서 한나절을 보내며 우정을 다지는게 다반사이다.
가을이면 된장을 담가 팔기도 하는데 그녀의 된장은 북어와 표고버섯 등 좋은 재료를 갈아 넣어서 별 양념 없이도 맛있는 된장찌개를 보장한다.
그런 넉넉한 그녀에게도 아킬레스는 있다.
그렇게 세 계절을 일하고 겨울이면 각종 치료를 받으러 병원 순례를 시작한다.
농 사 짓 는 다
5글자의 푸근함 속에 숨겨진 많은 어려움과 고통들이 겨울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다들 육십 문턱에 접어든 나이라 무리를 하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기에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려도 봤지만, 그녀의 농사 패턴은 변함이 없다.
세 계절동안 풀 뽑고 가꾸는데 집중하느냐 버려진 몸을 한 계절동안 살핀다.
그것도 이미 루틴이 되었다.
몸의 상태에 따라 강도와 빈도를 조절한다고 하는 그녀의 말이 진정 실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