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쓰임은 다 있다.

남에게 필요 없는 것이 내게 소용 가치가 있을 때

by 게을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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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출 도서 전용 가방.

'Carnegie Mellon University Computer Science Department' 배낭.

일단 포켓이 많고 속이 넓어서 책 예닐곱 권도 넉넉하다.

그리고 배낭이다 보니 책 무게를 양어깨에 균등하게 배분할 수 있어서 편하게 매고 걸을 수 있다. 6년 전 작은 아이가 대학원 유학을 위해 합격한 대학들의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기념품으로 가져온 것 중 하나였다.

아이는 최종 다른 학교로 결정을 내렸고, 작년에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정작 이 배낭의 주인은 이 가방의 존재를 잊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큰 효용 가치를 지니고 크게 쓰인다는 것을 전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쓰임은 아무도 모른다.

뭐든 예상 밖의 쓰임은 있는 법이다.



오늘도 나는 이 가방을 메고 도서관에 왔다.

이 배낭의 장점 중 하나는 안쪽이 코팅 처리되어 있어 비를 맞아도 마른 수건으로 툭툭 닦아내면 된다는 점이다. 오래 들다 보니 안쪽이 조금 헐고 코팅이 벗겨진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집에는 가방이 많다.

가장 많은 것은 면직물 에코백이다. 하지만 에코백은 한쪽 어깨에만 메야해서 인체 균형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예전에 PT 선생님께서 절대 들지 말라고 하셔서, 몇 개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기도 했다. 목과 허리 디스크를 신경 써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배낭이 제일 좋다. 양쪽 어깨에 무게가 균형 있게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근용 가방도 모두 배낭으로 바꾸었다.


문제는 에코백이 배낭 형태로는 거의 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은품이나 홍보용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단가 차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등산용 배낭을 메고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좀 과하다 싶어 고민하던 차에, 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미국에서 온 이 선물용 배낭은 지금까지 도서관 전용 가방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작 주인인 아이는 이 가방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이 가방의 효용으로 가벼운 소회를 덧붙인 이 그림을 아이에게 사진으로나마 보내주자, 아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역시 어머니!’라는 칭찬까지 보태어 나를 춤추게 했다.


이렇게 쓰임은 언제나 있다. 단지 때를 기다릴 뿐이다.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 한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잊힌 듯 지내더라도 언젠가는 꼭 때가 찾아온다.

빛나지 못하는 날은 있어도 헛된 시간은 없다.

그때를 위해 묵묵히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삶의 또 다른 쓰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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