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다. 늙고 있다. 죽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by 게을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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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다. 늙고 있다. 죽고 있다.

셋 다 동의어이다.

'젊음'은 명사에서 형용사 '젊다'가 파생되었지만

'늙다'는 동사에서 명사 '늙음'이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늙는 건 모두에게 해당하는 공통어이지, 특정 세대를 칭하는 게 아니다.


틀릴 수 없는 얘기란 무의미한 얘기이고,

세상에 틀릴 수 없는 진리를 떠드는 것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죽을 때까지 가장 낭만적으로 사는 방법은 공부하며 사는 것이다.


박구용 교수의 '늙어가는 존재의 미학'을 들으며, 용정 산림공원을 어씽(earthing)하다.

이게 내겐 소소한 행복이다.




'늙어가는 존재의 미학' 강의를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맨발 걷기를 할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맨발 걷기는 영어로 earthing이다.

원래' earthing'은 전기 전자의 공학 용어로 접지(接地)의 뜻인데, 이것이 웰빙과 연결하여 맨발로 땅에 접지한다는 의미이다. 지구(earth)라는 명사형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꾼 게 얼마나 멋진가!

'맨발 걷기'라는 직접적인 단어보다 더 철학적이고 자연을 품은 단어라 개인적으로 더 선호한다.


위의 서술은 전체 강의 중 내게 콕콕 닿은 핵심만 요약한 내용이다.

그동안 '늙다'와 '젊다' / '늙은이'와 '젊은이'를 상대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내게 박구용교수님의 '늙는 건 늙은이에게만 적용되는 명사형이 아니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동사형'이라는 논리가 새로웠고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란 건 흔히 말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다.

'늙다'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동사형으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어느 한순간만을 지정할 수 없다.

반면 '젊다'는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이다.

젊다, 늙다는 둘 다 서술어로 쓰이지만, 젊다는 '젊는다. 젊고 있다.'라는 진행 시제로 쓰일 수 없다.

동사형인 '늙다'만 '늙고 있다'라는 진행형으로 쓸 수 있다.

결국 살아가는 과정, 늙어 가는 과정, 죽어가는 과정은 동의어이다.


요즘 읽고 있는 김훈의 산문집 '허송세월'에서도 탁 꽂히는 구절이 있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 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 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오늘도 나는 살아가고 있고 늙어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배달될 내 부고장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하루를 살뿐이다.

나도 동의하는 가장 낭만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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