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머문 마음의 온도
오래라는 말은 입천장에서 천천히 굴러 떨어지는 듯한 울림을 지녔다. 짧지만 묵직하고, 가볍지만 깊다. 오래라는 말 앞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늦추고, 마음은 이유 없이 부드러워지거나 쓸쓸해진다. 그 단어 속에는 우리가 견뎌온 시간, 잃어버린 것들, 품어온 마음들이 층층이 눌려 있다. 그래서 오래라는 말은 시간을 가리키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의 무게를 말하는 쪽에 더 가깝다.
나는 오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어느 겨울 오후가 생각난다. 바닥에 누운 햇빛이 길게 늘어진 채 미동도 없던 날. 그 빛 사이로 먼지가 천천히 떠다니고, 창밖의 나뭇가지가 바람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순간. 그날 나는 혼자였다.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가슴이 묘하게 젖어들었다. 이유도 없이 울컥해지는 그런 날, 오래라는 단어는 내 마음을 붙잡아 흔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오래 비워진 자리처럼, 오래 쉬어간 마음처럼.
살다 보면 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지나간 얼굴, 끝난 관계, 버려야 할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 기억들. 스치듯 지나간 말, 미처 건네지 못한 고백, 너무 늦게 깨달은 마음. 손을伸혀도 잡히지 않는 그런 것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마음을 붙드는 데 익숙했다. 이미 끝난 페이지인데도 계속 펼쳐 읽고,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물며 해답 없는 질문을 붙들곤 했다. 오래 붙들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차마 쉽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라는 건 버티기와 같은 말이다. 오래 사랑했다면 그건 뜨겁고 화려한 감정보다도 묵묵히 반복되는 선택의 총합이다.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는 일은 결국 관계를 붙잡기 위해 수없이 작고 미세한 결심을 한다는 뜻이다. 실망을 삼키고, 서운함을 덮고, 때로는 고집을 내려놓으며 ‘한 번 더 같이 가보자’고 다짐하는 일. 아무리 좋은 사람도 끝까지 남아주는 건 아니다. 오래 이어지는 관계는 드라마보다 평범하고, 영화보다 조용하며, 때로는 지루할 만큼 일상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을 견딘 마음이 오래라는 이름을 갖는다.
오래 아팠다는 말에는 또 다른 온기가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요한 통증. 누가 보지 않아도 계속 저릿한 마음의 구석. 오래 아프면 처음의 날카로움은 무뎌지지만, 대신 깊어지는 부분이 생긴다. 오래된 상처는 희미해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모양을 바꾸며 다른 의미를 띤다. 시간이 지나면 아물 것 같았던 상처들이 어느 날 손끝으로 스치면 “여기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발견된다. 오래된 슬픔은 울음을 멈춘 뒤에도 남아서, 마음을 조심스럽게 비추는 등불이 된다.
나는 그런 슬픔과 꽤 오래 함께 살았다. 어떤 건 오래 참고, 어떤 건 오래 외면했고, 어떤 건 오래 붙들어 엎질러진 물처럼 쏟아져버렸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오래 겪은 감정들은 언젠가 내게 가장 조용한 위로가 되었다. 오래 울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남의 눈물에도 쉽게 마음이 당겨지고, 오래 버텼던 밤들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고단함을 듣는 귀가 열렸다. 오래라는 단어엔 이런 내력이 있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 동안 마음이 조금씩 자라고 퍼지고 깊어진다.
사람들은 가끔 오래 걸리는 자신을 미워한다. 빨리 잊지 못하고, 빨리 사랑하지 못하고, 빨리 정리하지 못하고, 빨리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나도 그랬다. 오래 머물면 정체된 듯 느껴지고, 오래 망설이면 무능력한 것 같고, 오래 고민하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오래 걸리는 마음은 그만큼 더 진지하게 들여다봤다는 뜻이라는 걸. 오래 망설인 선택은 대개 그만큼 중요한 선택이라는 걸. 오래 돌아온 길은 내게 꼭 필요한 우회일 때가 많다는 걸.
오래 머문 감정은 버리지 않아도 된다. 오래 걸린 이해는 더 단단하다. 오래 미뤄둔 일도 언젠가는 도착한다. 중요한 건 오래라는 시간을 흉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결정하고 빨리 잊고 가볍게 살아가라고 말하지만, 오래라는 단어가 품은 깊이와 여백은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주는 힘이 된다. 서두르지 않는 마음. 고르지 않은 걸음. 불완전한 속도. 그것들이 오히려 나를 살린다.
삶을 오래 살았다는 말도 사실 나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오래 사랑했는지, 무엇을 오래 품었는지, 무엇을 오래 놓지 못했는지, 무엇이 오래 마음을 흔들었는지가 그 사람의 나이다. 나이는 숫자로 쌓이지만, 삶은 오래 머문 감정들로 빚어진다. 오래 아꼈던 사람들, 오래 닫아둔 마음, 오래 품었던 바람, 오래되지 않은 꿈조차도. 그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서사를 만든다.
나는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무엇을 오래 품고 살았을까.’ 오래 버티느라 마음이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던 날들도 있었고, 오래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쳤던 순간들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오래들이 결국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왔다. 오래 기다린 날들 덕분에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고, 오래 헤맨 날들 덕분에 길을 잃는 법도, 다시 찾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오래라는 말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오래 걸려도 괜찮다. 오래 기다려도 괜찮다. 오래 돌아가도 괜찮다. 오래라는 말은 실패가 아니라, 나를 데리고 움직이는 또 하나의 속도일 뿐이다. 오래 걸려 도착한 마음은 대개 더 오래 머문다. 빠르게 꺼진 불빛보다 오래 태워낸 촛불이 더 멀리 비춘다는 걸 삶이 알려준 셈이다.
나는 이제 오래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말속에 깃든 온도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오래 버틴 만큼 더 따뜻해지고, 오래 지나온 만큼 더 단단해지며, 오래 걸린 만큼 더 나다워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에 조용히 말한다. 오래 걸려도 괜찮아. 조금 늦어도 괜찮아. 오래 헤매도 괜찮아. 결국 나를 데려갈 곳은 아직 앞에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안다. 오래라는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아직 흘러갈 수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오래 마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오래를 버텨낸 마음은, 오래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래 속에서 나는 천천히 자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오래 머문 것들이 결국 나를 지탱해 왔다는 당연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오래라는 말속에는 그렇게, 우리의 삶이 조용히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