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화면 앞에서 비로소 나
모방은 쉽다. 하지만 창조는, 매번 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일이다.
세상에는 이미 비슷한 말, 비슷한 생각, 비슷한 문장이 넘쳐난다. 익숙한 흐름 속에 나를 얹어두면 편안하다. 실패할 걱정도 줄고, 방향을 잃을 일도 적다. 흔적이 퍼져 있는 길을 따라 걷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으니 모방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그러나 창조는 달랐다. 남이 닦아놓은 길을 비켜 나의 길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모든 확신이 흔들렸다.
나는 한 번도 쉬운 창작을 만나본 적이 없다. 빈 화면 앞에 앉아 눈을 깜빡일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조금만 마음이 흔들리면 손끝의 단어들이 맥없이 흩어졌다. 넓은 하얀 공간은 종종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앞에 홀로 서 있을 때면,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조용히 무너지는 듯했다. 어떤 날은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전에 문장이 나를 밀어냈다.
‘나는 왜 이렇게 쓰기 어려울까?’
그 질문이 목을 조여 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방의 자리에서는 그런 고민이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를 따라 쓸 때는 손길이 오히려 부드럽게 흘렀다.
리듬을 베끼면 문장은 쉽게 채워졌다. 어느 정도의 감정, 어느 정도의 표현, 어느 정도의 길이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모방은 안전했고, 실수의 여지를 줄여줬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글 앞에서 나는 늘 허전했다.
내가 쓴 글인데도, 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좋아 보였지만 나 같지 않았고, 그럴듯했지만 속이 비어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모방은 흉내이지만, 창조는 고백이라는 걸.
나는 창작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창조는 늘 나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
창조는 단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척하다가 사라지고, 반짝하다가 꺼지고, 쓰다가 멈추고, 다시 쓰다가 지웠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여러 번 흔들리고, 지난날의 상처와 두려움이 문장 사이로 들이쳤다.
그때 알았다. 창조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복원력이라는 걸.
어느 날 밤이었다.
방 안은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버려진 문장들이 빽빽하게 흩어져 있었다. 세 시간 동안 문장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했고, 종이 위에는 손톱만큼의 진척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포기한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창밖으로 바람이 스치며 커튼이 아주 살짝 펄럭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 묘하게 숨이 트였다.
‘나도 이렇게 흔들려도 되겠구나.’
흔들리면서도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 창조의 첫걸음이라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창작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다.
창작은 마음을 꺼내는 일이다.
가려 두었던 감정, 말하지 못했던 고백,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나의 일부를 다시 불러내는 일.
그 과정은 마치 굳은 흙을 손으로 파내는 일처럼 느리다. 단단하고, 오래 걸리고, 때로는 손가락이 아플 만큼 버겁다.
하지만 그 흙을 파내야만 나의 언어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창작을 하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오래 깊숙이 숨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 때,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단어는 지금의 내 마음과 가깝다’는 직감이 작동했다.
문장을 끊는 타이밍, 쉼표의 위치, 문장 너머 흐르는 온도까지도 오래 이어온 내 삶의 흔적이었다.
창조란 결국 기술적 역량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계절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모방의 편안함을 떠올리면 가끔은 그 자리에 있고 싶기도 했다.
정해진 구조, 완성된 틀, 이미 검증된 감정의 결.
그 안에서 움직이면 비교적 부서질 일이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남는 것은 그런 글이 아니었다.
읽는 이의 마음에 박히는 문장은 어설퍼도 진실이었고, 약해 보여도 솔직한 문장이었다.
창조는 화려한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나를 인정하는 문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창작의 길에서 내가 제일 먼저 버린 것은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이었다.
완벽함은 창조를 가두고, 날카롭게 만든다.
완벽을 좇는 순간 문장은 굳어버리고 마음은 닫힌다.
그 대신 나는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느슨한 용기를 조금씩 가져보기로 했다.
이 느슨함이야말로 창조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였다.
부서져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
그 마음이 생기자 문장은 조금씩 나를 따라왔다.
창작이 어렵다는 사실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어려우니까 가치 있고, 어렵기에 오래 남는다.
어렵지 않았다면 누구나 해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애초에 '나만의 창조'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창조된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감동은 바로 이 ‘어려움의 잔향’ 때문이다.
그 작품이 도달한 자리까지 오기 위해 지나쳤을 수천 번의 지우기와 시작, 흔들림과 멈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되어 마음에 닿는다.
나는 이제 창작과 모방의 차이를 선명하게 안다.
모방은 내가 없어도 완성된다.
창조는 내가 없으면 단 한 줄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창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나를 만든다.
나는 창조를 할 때 가장 나다워지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고, 나를 이해하게 된다.
창조는 나와의 가장 깊은 대화이자, 가장 오래된 자기 회복의 방식이었다.
오늘도 나는 빈 화면 앞에 앉는다.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지만 결국 돌아온다.
왜냐하면 모방의 길은 편하지만, 창조의 길에만 내가 있기 때문이다.
걸음이 느려도, 흔들려도, 자주 멈춰 서도 괜찮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나만의 문장을 찾고 있으니까.
모방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조는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창조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는다.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이 과정이 바로,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니까.
모방은 쉽지만,
창조는 어렵다.
그렇기에 창조는 언제나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