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장|변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감정의 결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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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igi Cherubini – “Marcia funebre sulla morte di un eroe sconosciuto”

변하지 않는 건 결국 사랑이다. 사람은 바뀌고, 관계는 흐르고, 계절은 몇 번이고 새 얼굴을 들고 찾아오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기는 방식만큼은 기막히게 닮아 있다. 누구를 향하든, 어떤 순간에 피어나든, 그 떨리는 결은 기어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누군가를 잊었다고 믿는 순간에도, 우리는 다른 얼굴 앞에서 다시 흔들린다. 대상만 바뀔 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닌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한 번도 바람을 피우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바람을 피운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잔인하지만 진실에 가깝다. 그 말 아래에는 사람의 욕망이 아니라, 사랑을 대하는 태도의 고유한 결이 숨어 있다. 어떤 이는 사랑을 쉽게 말하고, 쉽게 믿고, 쉽게 배반한다. 그리고 그 배반을 또 다른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불륜을 사랑이라고 믿는 뻔뻔한 확신도 그 결에서 나온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욕망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거짓을 감정이라고 우기며, 맹렬하게 자기 자신을 속인다. 놀랍게도 그 착각은 오래간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믿음처럼.

사람은 달라지는 것 같지만, 사랑 앞에서 반복하는 패턴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방식, 떠나는 방식, 상처를 남기는 방식. 다 겹쳐보면 묘하게 닮아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것이 우연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자리한 감정의 기질, 사랑에 반응하는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처음인 듯 설레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이전의 사랑에서 배웠던 방식으로 울고, 웃고, 붙잡고, 놓는다. 감정은 대상만 달리할 뿐 늘 같은 자리를 맴돈다.

몇 해 전 겨울 끝자락, 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이건 사랑이야. 절대 거짓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잃은 사람 같았다. 눈동자가 이유 없이 반짝였고, 목소리는 확신으로 떨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의 말이었다. 전에 사랑했던 여자에게도 똑같이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너를 진짜 사랑해.” 그때도 확신했었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사랑의 환상’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사랑이라 부르고, 충동을 사랑이라 포장하며, 죄책감의 미끄러진 감정을 ‘어쩔 수 없었어’라는 문장으로 둔갑시킨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착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을 가장 많이 훼손하는 것도 그 변하지 않는 착각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전부 상처와 착각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또한 이렇게 믿고 싶다. 변하지 않는 감정 중 가장 단단한 건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사랑은 한 번 피어났다가 사라져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형태는 달라질지 몰라도, 마음 깊이 남아 다른 감정의 밑바닥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이 문득 떠오르고, 그때 듣던 목소리의 온도가 되살아나는 순간처럼. 사랑의 흔적은 아주 미세한 틈만 있어도 다시 빛을 발한다.

어느 날 밤, 오랜만에 들어간 서랍에서 오래전 누군가가 건넸던 작은 편지를 발견했다. 이미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글씨는 번져 있었지만, 한 문장만은 선명했다. “나는 너에게 거짓 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놀라운 속도로 과거로 끌려갔다. 그 사람과 거닐던 겨울길, 서로의 온도를 의지하며 걸었던 날들,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흩어져버린 순간까지. 나는 이미 다 흘려보냈다고 믿었다. 그런데 편지 한 장이 무너뜨렸다. 사랑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말하고 싶을 만큼 선명한 감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구를 마주하든, 어떤 계절이 다가오든,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 살아날 여지는 언제나 있다. 대상은 바뀔지 몰라도, 마음이 떨리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숨이 잠시 멎는 듯한 설렘, 가슴 한가운데서 묘하게 뜨거워지는 감각, 그 사람의 이름만 떠올려도 하루가 빛나는 듯한 착각. 이런 감정의 구조는 사람마다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거의 같다. 사랑은 사람을 바꿔도 스스로의 색은 바꾸지 않는다. 감정의 설계도는 이미 우리 안에 박혀 있다.

그래서 사랑은 반복된다. 다시 만나고, 다시 떠나고, 다시 사랑한다. 매번 다른 얼굴이지만, 감정의 패턴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 반복이 때로는 희망이 되고, 때로는 저주가 된다. 어떤 이는 이 반복 때문에 사랑을 두려워하고, 또 어떤 이는 이 반복 덕분에 사랑을 믿는다. 나는 두 감정 모두 이해한다. 사랑은 변하지 않기에 사람은 상처받고, 사랑은 변하지 않기에 사람은 살아간다.

불륜을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착각도 이 구조 안에 있다. 그들은 사랑의 결을 오해하고 있다. 사랑을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 말하며, 자신을 움직이는 충동을 진실이라 포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욕망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는 오래가고, 쉽게 변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자기 합리화를 이어간다. 그들의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의 모양이다.

사랑의 본질은 훨씬 조용하고, 훨씬 깊고, 훨씬 절대적이다. 상대를 파괴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며 피어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된 도망이고, 핑계이고, 변하지 않는 이기심이다. 반면 진짜 사랑은 마음을 흔들어도, 삶을 흔들지는 않는다. 진짜 사랑은 누군가를 잃은 후에도 남는다. 그 사람의 부재가 시간이 지나도 한순간의 숨처럼 찾아오는 날, 우리는 깨닫는다.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의 순수함이라고.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사랑을 통해 배우는 감정의 본질 아닐까. 사랑은 우리가 다시 살아가는 힘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때로는 고요한 위로가 된다. 감정의 파도는 매번 다르게 보이지만, 그 안에 스며 있는 결은 변하지 않는다. 그 결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색을 띠지만, 결국 모두 같은 사랑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잃어도, 사랑을 버려도, 사랑을 증오해도, 다시 사랑을 향해 걸어간다.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얼굴도, 관계의 형태도 아니다.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의 구조다. 사람만 달라질 뿐, 사랑이 일으키는 떨림은 똑같다.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다시 일으키기도 하는 그 떨림.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구원이 되기도 하는 그 감정. 사랑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만 바꿀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믿는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
그건 사랑의 본질 하나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