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장|행복하게 하는 글자

입꼬리가 먼저 반응하는 말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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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Koechlin – Les Heures persanes, Op.65 : IV. Sieste, avant le départ – lent et vague

행복하게 하는 글자.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그것이어야 한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입꼬리가 먼저 반응하고, 의미를 다 헤아리기 전에 마음이 느슨해지는 글자. 그런 글자는 늘 사소한 얼굴을 하고 있다. 특별하지 않아 보여서 쉽게 지나치지만, 막상 사라지면 하루의 온도가 달라진다. 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아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글자를 오래 바라본다. 단어가 아니라 모양을 보고, 뜻이 아니라 여운을 더듬는다.

글자는 원래 무표정한 기호일 텐데도 어떤 것들은 분명 표정을 갖고 있다. 둥글게 웃는 모음이 있고, 고개를 살짝 숙인 자음이 있다. 그 배열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마음을 건드린다. 이를테면 ‘밥’이라는 글자처럼. 배를 채우는 말이기 전에 안부가 되는 말, 오늘을 무사히 통과했는지를 묻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 이 두 글자를 떠올리는 순간, 허기보다 먼저 안정이 온다. 괜찮다는 말보다 밥은 더 정확하다.

행복하게 하는 글자는 나를 과거로 데려가기도 한다. ‘집’이라는 글자를 쓰면 문손잡이의 차가운 감촉과 신발을 벗는 소리가 동시에 떠오른다. 돌아갈 수 있다는 감각,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 집은 공간이 아니라 상태에 가깝고, 그래서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작동한다. 어떤 날은 그 글자 하나로 하루를 견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성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니까.

또 어떤 글자는 시간을 품고 있다. ‘아직’이라는 글자는 끝맺지 않는 용기를 데려온다. 실패 뒤에 붙어도 모양이 망가지지 않고, 기다림 앞에서도 숨을 고른다. 아직이라는 말이 있는 한 오늘은 결론이 아니다. 이 두 음절 덕분에 나는 서두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모든 것이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아직은 느린 숨을 허락한다.

글자를 쓰는 속도도 중요하다. 급하게 적으면 뜻만 남고, 천천히 쓰면 감정이 따라온다. 나는 일부러 느리게 쓴다.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되풀이하며 손끝의 감각을 확인한다. 종이에 남는 잔흔, 화면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균형. 그렇게 글자는 도구를 넘어 동반자가 된다. 말이 다 닿지 못한 곳까지 대신 가주는 존재. 그래서 아무도 읽지 않을 문장도 기꺼이 쓴다. 읽힘보다 존재가 먼저인 글자들이 있으니까.

행복하게 하는 글자는 대개 명령하지 않는다. 더 잘하라고 재촉하지 않고, 더 가져야 한다고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수고했어’라는 글자들이 그렇다. 평가가 아닌 위로로 작동하는 말, 끝난 뒤에야 제자리를 찾는 음절. 이 글자를 받는 순간 하루는 비로소 닫힌다. 덜 아프게, 덜 시끄럽게.

사람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이름은 자음부터 웃고, 어떤 이름은 모음이 길게 숨을 쉰다. 이미 곁에 없는데도 이름만 적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 그 글자들은 이별 이후에도 일을 한다. 안부를 묻고, 등을 토닥이며, 말없이 곁에 앉아준다. 행복하게 하는 글자가 반드시 밝을 필요는 없다. 슬픔을 품은 채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글자들이 있다.

나는 글자를 통해 나를 달랜다. ‘괜찮아’라는 말보다 그 사이의 공백을 더 오래 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배열, 서로를 버리지 않는 형태가 마음에 든다. 글자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실패한 날에도 쓸 수 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밤에도 적어둘 수 있다. 몇 개의 글자만 반짝이면 그날은 충분하다.

행복은 늘 소문자로 온다. 느낌표를 달지 않고, 공백 사이에 숨어든다. 커피, 밤, 비, 그리고 이름 없는 감정들. 평범해서 자주 잊히지만 그래서 더 자주 필요한 것들. 나는 그 글자들을 마음속에 모아둔다. 내일이 조금 버거울 때 꺼내 쓰려고. 글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불러주기 전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나를 내일로 데려간다. 행복하게 하는 글자는 그렇게, 큰 소리 없이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