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말을 끝내지 않아도 되는 밤

차가 식기 전까지의 이야기

by Helia

말랑숲의 밤은,
이제 막 깊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밤은 말보다 숨이 먼저 쌓이던 밤이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달빛은 숲을 밝히기보다 눌러 덮듯 내려와 있었고, 공기는 말과 말 사이에 머물며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말랑숲은 늘 그랬다. 감정이 터진 순간보다, 터지고 난 뒤에 남은 시간을 더 오래 붙잡아 두었다.
여우의 말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한 번 꺼낸 이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여우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말을 멈추지 않는 대신, 속도를 늦췄다. 급하지 않게, 그러나 되돌리지도 않게.
“괜찮은 척을 하면요,”
여우가 낮게 말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할 기회가 사라지더라고요.”
미아는 여우를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손수건 위로 손끝이 얹혀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젖어 있던 천은 체온을 머금고 차분해졌고, 미아는 그 감촉을 확인하듯 손가락을 한 번 더 오므렸다. 울음은 끝났지만, 울었던 사실은 아직 몸 안에 남아 있었다.
여우는 소파에 앉은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았다.
등을 깊게 기대지 않고,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말을 흘리는 자세가 아니라, 내놓으려는 쪽으로 기운 자세였다.
“처음엔 편했어요.”
여우의 목소리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으니까, 실망시킬 일도 없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기대가 없는 자리가 숨이 막히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 동안에는, 움직임도 말을 방해하지 않아야 했다.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느렸고, 바닥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전자를 올려두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찻잔을 꺼냈다.
잔을 데우고, 찻잎을 넣고, 김이 올라오기 전까지 기다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거실에서는 여우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여우가 말했다.
“막상 움직이려고 하면, 늘 한 발 앞에서 멈추게 되더라고요.”
“아무도 묻지 않으니까, 나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말하지 않게 됐어요.”
그 말에, 미아의 귀가 아주 작게 움직였다.
위로도 판단도 아닌, 닿았다는 표시였다.
“그래서,”
여우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왔어요.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로요.”
“버티는 방법은 알겠는데, 내려놓는 방법은 모르겠어서.”
미아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 여기서는,”
미아가 조용히 말했다.
“버티지 않아도 돼.”
여우의 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답이라기보다는, 말이 몸에 닿았다는 반응에 가까웠다.
물이 끓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나는 찻잔 두 개를 쟁반에 올려 들었다. 잔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여우의 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을 자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자, 차 향이 거실에 퍼졌다.
공기가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말랑숲의 달빛도 그 향을 따라, 한 겹 더 낮아진 듯했다.
“천천히 마셔.”
내가 말했다.
“이야기는…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으니까.”
여우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함이 손바닥에 닿자,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그 변화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나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쿠션 위에 몸을 말고, 귀를 쫑긋 세웠다. 바느질 사는 언제 손을 써야 하는지보다, 언제 귀를 세워야 하는지를 먼저 배운다.
여우는 찻잔 위로 올라오는 김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괜찮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더 무서워요.”
미아는 주머니 위에 얹은 손을 가볍게 눌렀다.
“무서운 건,”
미아가 말했다.
“진짜 마음이 나왔다는 뜻이야.”
여우는 그 말을 곱씹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은 연습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작고, 불안정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숨기지 않은 소리였다.
차는 천천히 식고 있었다.
말은 서두르지 않았고, 밤도 재촉하지 않았다.
이 밤에는,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은 채 숨을 고르는 토끼 미아가 있었고,
괜찮은 척의 이유를 끝까지 말해 보려는 여우가 있었고,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귀를 세운 바느질사 고양이 미미가 있었다.
이야기는 아직 매듭에 닿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먼저 끝내려 하지 않는 시간 속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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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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