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연락이 애정이던 순간에서, 집착이라 불리기까지

by Helia

연락. 처음에는 그가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루 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그 정도면 마음이 닿아 있다고. 그래서 나는 그 리듬에 맞춰 하루를 살았다. 아침, 점심, 밤. 시계처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어김없이 서로를 확인했다. 어느 날은 그가 모닝콜을 부탁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눈은 반쯤 감긴 채로 전화를 걸었다. 알람보다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사람 냄새나는 목소리로 하루를 깨워주고 싶었다. 그의 하루가 덜 피곤하길 바랐고, 내 목소리가 그 시작에 놓이길 바랐다. 그때의 연락은 의무가 아니었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손가락은 그 뒤를 따랐다.
그의 하루는 퇴근으로 끝났고, 내 하루는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끝났다. 그는 직장인이었고,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에 연락이 앉았다. 퇴근 후 “이제 끝났어”라는 짧은 문장이 오면, 그날의 긴장이 풀렸다. 그 한 줄로 하루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연락은 서로의 일정을 맞추는 도구가 아니라, 안부를 건네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따뜻했고, 반복은 안정이었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는 건 늘 같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은 질문을 달고 돌아왔다. 왜 지금 해야 하느냐, 왜 꼭 그래야 하느냐. 어제까지 당연했던 것들이 오늘은 설명을 요구받았다. 먼저 하던 연락이 줄어들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서운함을 말했다. 큰 소리도 아니었다. 비난도 아니었다. 그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먼저 하는 법이 없어 서운하다고, 그 정도였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잔소리였다. 질린다는 말이었다. 그 단어들은 갑작스러웠고, 생각보다 차가웠다. 말은 짧았지만, 온도는 낮았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식을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식어 있었는데, 나만 손을 데우고 있었던 걸까. 좋아할 때는 애정이던 연락이, 익숙해지니 집착이 되었다. 마음이 있을 때는 배려였던 말들이, 지치자 부담이 되었다. 연락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졌다. 그 차이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설명할수록 더 멀어졌다. 말을 아끼면 멀어질 것 같았고, 말을 하면 잔소리가 되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틀린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멈췄다.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결심이라기보다 선택에 가까웠다. 더는 설명하지 않기로, 더는 증명하지 않기로. 나야 좋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말이 이렇게 정확한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내 연락이 애정이 아니라 집착으로 읽힌다면, 더 이상 손을 뻗을 이유가 없었다. 연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고, 연락한다고 해서 관계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연락을 끊자 생각이 늘어났다. 그동안 나는 작은 말풍선에 너무 많은 감정을 맡겨두고 있었다. 답장이 늦어지면 마음이 먼저 흔들렸고, 읽고도 오지 않는 답에 하루가 길어졌다. 연락은 점점 커졌고, 나는 그 안에서 작아졌다. 멈추고 나서야 알았다. 한쪽만 계속 손을 내미는 건 관계가 아니라 습관이라는 걸.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향해 말을 던지는 일은, 결국 나를 비우는 일이었다.
모닝콜을 걸던 새벽이 떠올랐다. 잠을 이기며 전화를 걸던 손,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 그때의 나는 분명 기꺼웠다. 하지만 기꺼움은 늘 상대의 반대편에서 유지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하루를 깨우는 일이 당연해지는 순간, 그 자리는 쉽게 비워진다. 퇴근 후 연락을 기다리던 밤들도 떠올랐다. 그에게는 하루의 끝이었고, 나에게는 하루의 전부였던 시간들. 그 온도 차이를 나는 너무 늦게 인정했다.
연락은 관계의 증거가 아니라 결과다. 마음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흔적일 뿐, 붙잡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자주 하느냐 적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느냐의 문제다. 균형이 무너지면, 아무리 많은 말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왜 연락하지 않느냐고, 왜 예전 같지 않느냐고.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연장하기 위해 던질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멈춘 뒤에도 가끔은 휴대폰을 확인한다. 습관처럼 화면을 켜지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사라지자 실망도 줄었다. 그 자리에 차분함이 남았다. 연락이 없어도 하루는 흘러갔고, 나는 생각보다 잘 지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무응답이 내 가치가 아니라는 걸, 그제야 이해했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아쉬워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결국 다시 연락하길, 예전처럼 먼저 손을 내밀길. 하지만 마음이 식은 사람 앞에서 더 애쓰고 싶지 않았다. 내 말이 잔소리가 되고, 내 관심이 부담이 되는 순간, 그 관계는 이미 제 자리를 잃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키지 않기로 했다. 물러나는 건 패배가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선택이었다.
이제는 연락을 조심스럽게 쓴다. 아무에게나 쉽게 꺼내지 않는다.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맡길 사람을 고른다. 돌아오지 않을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고, 설명해야만 유지되는 관계에 매달리지 않는다. 연락이 집착이 되는 순간, 나는 조용히 멈춘다. 그 자리에 남는 건 미련이 아니라, 나를 지켰다는 감각이다.
연락하지 않기로 한 선택은 누군가를 잃기 위한 결정이 아니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 마음이 소모되지 않도록, 의미 없는 왕복에 지치지 않도록. 내 연락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면, 그 사람 역시 내 삶에 있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연락이 끊긴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지만, 그 공백은 아픔보다 숨 쉴 공간에 가까웠다. 내 연락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내 마음까지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