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수면 위에서 사라진 것들

by Helia

이제 이 숲은,
다음 세대를
천천히 고르고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생각보다 먼저 몸에 스며들었다. 두꺼비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몸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느꼈다. 놀람도 저항도 아니었다. 겨울을 지나온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숲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언제나 선택의 결과였고, 그 선택은 늘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공기의 결이 낮아졌다. 흙 아래에서 올라온 습기가 발끝에 머물렀다. 두꺼비는 그 흐름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작은 두꺼비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숲의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빛은 잘게 부서졌고, 소리는 바닥 가까이 가라앉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흙은 움푹 꺼졌다가 천천히 되돌아왔다.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품어온 자리처럼.
연못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숲은 늘 먼저 기척을 보냈다.
공기가 한층 차가워졌고, 소리는 한 박자 늦게 되돌아왔다. 두꺼비는 그 어긋남이 물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임을 알아차리고 걸음을 늦췄다. 물은 많은 것을 비춘다. 하늘과 나무, 지나간 계절의 얼굴까지. 그러나 무엇보다 물은,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것들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다.
연못의 가장자리는 고요했다. 바람은 거의 닿지 않았고, 수면은 얇은 막처럼 팽팽했다. 그 고요 속에서 두꺼비는 보았다. 물 위에 떠 있는 아주 작은 점들. 점이라 부르기엔 너무 연약했고, 생명이라 하기엔 아직 형체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저 작은 점들 안에 이미 여러 갈래의 시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작은 두꺼비는 연못을 바라보다가 두꺼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질문은 없었다. 대신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 보는 것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눈이었다. 두꺼비는 그 시선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오래 바라보는 것은 때로, 필요 이상의 말을 부른다.
숲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았다.
물속에서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일어났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었다. 준비였다. 이 숲에서는 늘 그렇다. 시작보다 오래 걸리는 것은 준비이고, 준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선택이다.
두꺼비는 연못 가장자리에 몸을 낮췄다.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는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 흔들림을 보며 생각했다. 이 숲에서 온전함이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텨낸 뒤에야 허락되는 것인지.
작은 두꺼비가 물 가까이 다가갔다. 앞발이 수면에 닿자, 아주 작은 파문이 번졌다. 파문은 멀리 퍼지지 못하고 곧 사라졌다. 두꺼비는 그 짧은 흔들림 속에서 또 하나의 규칙을 읽었다. 너무 크게 움직이면 선택에서 벗어나고, 너무 가만히 있으면 잊힌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늘 그 사이를 건너는 일이다.
그때였다.
아까 보이던 점 하나가,
언제부터인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사라지는 순간은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파문도 없었다. 다만 ‘있었다’는 사실만이 조용히 과거가 되었다. 두꺼비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 고개를 돌리는 쪽이 이 숲에서는 더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숲의 안쪽에서 다시 시선이 느껴졌다. 숨지도, 드러나지도 않은 채 머무는 시선. 물 위의 점들과 연못 가장자리에 선 두 생명을 같은 무게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꺼비는 그 시선이 이미 판단을 시작했음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숲은 수를 세고 있었다.
숲은 늘 스무를 허락하지만,
열만 기억한다.
그 규칙은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반복될 뿐이다. 두꺼비의 기억 속에서 오래된 장면들이 겹쳐졌다. 물속에서 스쳐 지나가던 그림자들. 함께 시작했으나 함께 오르지 못했던 숨들. 그 사실을 애도하는 존재는 없었다. 숲은 애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작은 두꺼비는 아직 그 계산을 모른다.
스무에서 열로 줄어드는 리듬을,
이 숲이 요구하는 속도를.
그러나 몸은 이미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작은 두꺼비는 물러서지도, 나서지도 않았다. 삼켜지지 않으면서도 잊히지 않는 자리. 두꺼비는 그 위치가 우연이 아님을 느꼈다.
연못 위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빛은 물속으로 내려가 점들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그 순간, 아주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점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몇 개만이, 아주 조금 방향을 바꾸었다. 반사에 가까운 움직임. 그러나 두꺼비는 알았다. 이 작은 차이가 먼 훗날의 형태를 가를 지도 모른다는 것을.
작은 두꺼비는 숨을 들이켰다. 그 숨은 이전보다 깊었고, 조금 무거웠다. 두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규칙을 바꾸지 못한다. 대신 그는 그 자리에 머물렀다. 숲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충분히 지켜보는 시간이었으니까.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연못의 수면이 가볍게 흔들렸다. 파문이 겹치며 점들의 윤곽이 흐려졌다. 그 흐려짐 속에서, 또 하나의 점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두꺼비는 그 변화를 보았지만 붙잡지 않았다. 붙잡는 것은 이 숲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가 기울고 숲의 색이 달라졌다. 두꺼비는 몸을 돌려 연못에서 물러났다. 작은 두꺼비도 따라왔다. 떠난다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숲에서 떠남은, 다음을 맡긴다는 의미였다.
두 생명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는 연못에 닿지 않았다. 닿지 않는 것도 하나의 거리였다. 두꺼비는 마지막으로 연못을 돌아보았다. 물 위에는 여전히 점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숲은 다시 침묵했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연못의 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
조용히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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