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무사히 오늘을 통과하는 방법

by Helia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는 나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눈을 뜨면 이미 시간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늘 그렇듯 그 흐름에 뒤늦게 몸을 싣는다. 특별할 게 뭐 있겠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걸. 오늘을 새롭게 살겠다는 다짐도,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머리는 전날 밤에 감아 두었고, 아침은 준비라기보다 통과에 가까웠다. 하루를 잘 보내겠다는 말 대신, 무사히 넘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오늘을 잘 산다는 기준은 나에게 늘 단순했다. 아무 일 없이 끝나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특별하게 보내자고 마음먹은 적도 거의 없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오래가지 않았고, 목표를 붙들고 사는 삶은 내 성정과 잘 맞지 않았다. 대신 나는 하루를 하나의 미션처럼 받아들였다.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완료 여부만 있는 미션. 아침부터 밤까지 큰 사고 없이, 감정이 크게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심하게 미워하지 않으면서 버티는 것. 그것이 내가 매일 수행해야 하는 과제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그 미션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하루는 늘 비슷한 얼굴로 흘러갔다. 창밖 풍경도, 사람들의 속도도, 나의 표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복은 익숙했고, 익숙함은 때로 안도감을 주었다.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하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나치게 흔들지 않는 법을 배웠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적고, 크게 바라지 않으면 무너질 일도 줄어든다는 걸.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그 조용한 요령을 따라 하루를 건넜다.
그런 하루 속에서, 늘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하루 속에서 늘 어김없이 글을 써 내려갔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그대로 행여나 잊어버릴 새라 빠르게 적는 게 내가 하는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었으니까.
글을 쓴다고 해서 거창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목적도 없었다. 그저 생각이 생겨났을 때 붙잡아 두고 싶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존재하던 감정이,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늘 서둘렀다. 문장이 되든 말든, 말이 안 되든 어색하든 상관없이 적었다. 중요한 건 완성도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하루가 잠시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는 속도가 늦춰졌다.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이 종이 위에 내려앉으면서 비로소 숨을 고르는 듯했다. 쓰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고, 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들이 있었다. 글은 나에게 즐거움이라기보다 숨구멍에 가까웠다. 그게 없었다면 하루는 너무 매끈하게 흘러가 버려, 내가 그 안에 있었는지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를 채우는 대부분의 시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단한 사건은 없었고, 기억에 오래 남을 장면도 드물었다. 그저 비슷한 일들을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도 글로 남겨진 순간들은 이상하게 다른 무게를 가졌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생각도 문장이 되면 잠시 머물 자리를 얻었다. 별것 아닌 하루가 완전히 공허하지는 않았다는 증거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그렇게 하루를 기록하며 견뎠다.
가끔은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도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럴 때도 나는 글을 썼다. 해결하려 들지 않고, 분석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런 상태로 오늘을 살고 있다는 사실만 남겼다.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오늘의 내가 어떤 결로 존재했는지를 부정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남긴 문장들은 종종 투박했고, 다시 읽기 민망할 만큼 솔직했지만, 나는 지우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오늘의 일부였으니까.
해가 지고 밤이 오면 하루는 조금 느슨해졌다. 낮 동안 애써 밀어두었던 생각들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는 다시 글을 썼다. 밤에 쓰는 글은 낮보다 더 조용했고, 더 꾸밈이 없었다. 누구에게 보여줄 마음이 없으니 문장은 제멋대로 흘러갔다. 중간에 끊기기도 했고, 끝맺지 못한 채 멈추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 역시 늘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렇게 쓴 글들이 하루하루 쌓여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였던 문장들, 다시 펼쳐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록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무사히 지나온 날들의 증거였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해 준 유일한 장치. 글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나를 붙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는 끝나간다. 특별한 일은 없었고, 크게 잘한 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 거기서 거기인 하루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는 걸. 무사히 오늘을 보내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나를 기록해 두었다는 걸. 내일도 어김없이 하루는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특별해지려 애쓰지 않은 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서둘러 적어 내려가며 그 하루를 통과할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나의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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