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다

겉보기로 판단당하는 사람의 얼굴

by Helia

겉보기는 사람을 너무 빨리 끝내버린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음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몇 초 남짓한 시간 동안 시선은 얼굴을 훑고, 말투를 재고, 몸짓의 속도를 가늠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인상은 마치 요약본처럼 이후의 모든 장면을 대신한다.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무게를 지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 맹해 보이는 사람, 그래서 조금쯤은 만만해도 되는 사람. 그 판단은 언제나 놀랍도록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낯선 사람 앞에 서면 나는 늘 말이 늦다. 인사말 하나를 꺼내기까지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선택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이 말은 무례하지 않을지, 저 말은 너무 가볍지 않을지, 웃음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같은 질문들이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는 사이 입은 잠시 길을 잃고, 표정은 반 박자 늦게 따라온다. 어버버거리며 뚝딱거리는 그 짧은 공백은 상대에게 충분한 단서가 된다. 서툴다, 약하다, 주도권을 쥐어도 되는 사람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설명을 끝낸 사람이 된다.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다는 건, 사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더 가깝다. 쉽게 말하지 않으려는 태도, 단정하지 않으려는 속도는 내게는 오래된 습관이다. 그러나 겉보기는 그런 맥락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겉보기는 즉각적인 판단을 요구하고, 단순한 결론을 선호한다. 그래서 나의 침묵은 배려가 아니라 미숙으로 번역되고, 나의 망설임은 깊이가 아니라 부족으로 오해된다. 그렇게 나는 종종, 존중을 받기도 전에 이미 선이 낮아진 자리 위에 서 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말끝은 짧아지고, 설명은 생략된다. 농담은 가벼워지고, 경계는 느슨해진다. 나는 그 변화가 언제 시작되는지 정확히 안다. 상대가 나를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순간이다. 그 편안함은 친절이 아니라 허락에 가깝다. 함부로 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어디에도 근거 없는 확신. 나는 그 확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얼굴이 하나의 거울처럼 느껴진다. 내가 말을 아끼고 있을수록, 상대는 자신의 태도를 더 솔직하게 비춘다. 겉보기로 판단하는 사람일수록 그 거울 앞에서 서슴없다. 무례는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선을 넘는 말은 농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사실 나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걸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누군가를 빠르게 재단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해와 감정은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가 허락하지 않은 선을 넘는 말들 앞에서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한마디가 오래 남아, 혼자 있는 시간에 다시 돌아온다. 그 말들은 질문처럼 남는다. 왜 나는 늘 겉보기에서부터 이런 오해를 감당해야 할까. 왜 조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낮춰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한동안 나는 그 껍질을 깨기 위해 애썼다. 목소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말끝을 또렷하게 다듬고, 웃음을 줄였다. 스스로를 방패처럼 세우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하면 덜 만만해 보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조심했고, 선을 덜 넘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점점 나와 멀어졌다. 원래의 나, 쉽게 판단하지 않고 천천히 듣던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겉보기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요구했다.
세상은 종종 유능함을 빠름으로 오해하고, 자신감을 소음으로 착각한다. 말이 적은 사람은 할 말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고개를 들 줄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그런 기준 속에서 나는 늘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겉보기로 시작된 관계는, 대부분 겉보기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나를 쉽게 보던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멈췄고, 더 깊이 보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시간을 들여 나를 바라본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잘못 읽었다가, 천천히 나의 선을 발견하는 사람들. 내가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만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관계의 결은 조용히 달라졌다. 큰 사건도, 극적인 장면도 없었다. 다만 말의 무게가 달라지고, 태도의 높이가 조금씩 맞춰졌다. 그 변화는 늘 늦게 왔지만, 그만큼 단단했다.
나는 여전히 낯선 자리에서 서툴다. 여전히 첫인사는 매끄럽지 않고, 말은 천천히 열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느림이 나를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겉보기로 보이는 어리숙함 뒤에는 쉽게 넘지 않으려는 경계가 있고, 맹해 보이는 침묵 뒤에는 단정하지 않으려는 시간이 있다.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겉보기는 틀린 판단이라기보다, 너무 빠른 결론에 가깝다. 깊이를 알기도 전에 내려진 요약본 같은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요약본에 나를 모두 맡기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가 나를 겉모습으로만 판단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일 뿐, 나의 한계는 아니다.
이제 나는 겉보기를 부정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는다. 겉보기는 시작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에서 어떤 사람으로 읽히든, 그다음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간과 태도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할 것이고, 여전히 쉽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만만하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그 사람의 겉보기일 뿐이다. 나는 겉모습보다 오래 남는 것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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