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장|오래된 노래

그 노래를 듣던 내가 아직 남아 있어서

by Helia

추천 클래식

Sonata Representativa per strumenti diversi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 1669년경)


오래된 노래라고 하면 나는 가장 먼저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그리고 이선희의 J에게를 떠올린다. 노래를 처음 들었던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노래들을 듣던 장면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다. 밤이었고, 방 안은 조용했고, 라디오는 낮은 음량으로 켜져 있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는데, 마음은 괜히 바빴던 시절이었다. 말로 꺼내기엔 너무 서툴렀던 감정들이, 노래를 통해서만 겨우 숨을 쉬던 때였다.

그 시절 우리는 감정을 직접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보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도 어딘가 어색했다. 그래서 노래가 대신 말해주었다. ‘그리움만 쌓이네’라는 문장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의 이름이었고,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차마 직시하지 못한 마음을 부드럽게 비켜갔다. ‘J에게’는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남아, 듣는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그 노래들은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 않았지만,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자리 하나를 마련해 주었다.
오래된 노래의 힘은 친절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요즘 노래들처럼 지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에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넣는다. 같은 노래를 듣고도 누군가는 첫사랑을, 누군가는 혼자 남겨진 밤을 떠올린다. 그래서 오래된 노래는 언제나 개인적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각자에게만 의미가 있다.

그 노래들을 자주 듣던 시간은 대체로 혼자였다. 숙제를 하다 말고, 불을 끄지 않은 채 누워서,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로. 바람 소리와 라디오 잡음이 섞인 공간에서 노래는 더 깊어졌다. 가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멜로디만으로도 충분했다.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노래보다 오래된 노래가 더 필요해진다. 지금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가라앉는 밤, 딱히 불행하지 않은데도 허전한 순간들. 오래된 노래는 그런 감정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곁에 앉아 있는다. 말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준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노래들을 듣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걸 몰랐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멀어지는지, 시간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데려가는지. 하지만 그 무지함 덕분에 감정은 더 진했다. 계산하지 않고 좋아했고, 이유 없이 슬퍼했다. 오래된 노래는 그 시절의 나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들으면 노래보다 내가 먼저 반응한다. 그때의 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가끔은 노래보다 그 노래를 듣던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방 안의 어둠, 스탠드 불빛, 느리게 돌아가던 시계 초침.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던 정적. 그런 장면들이 음악과 함께 겹쳐진다. 그래서 오래된 노래는 추억을 미화하지 않는다. 좋았던 순간뿐 아니라, 서툴렀던 선택과 말하지 못했던 마음까지 함께 데려온다. 듣고 나면 조금 아픈 이유다.

우리는 그 노래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 노래에 기대어 살던 시간을 사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말 대신 노래를 틀어두고, 감정 대신 멜로디에 몸을 맡기던 시절. 누군가에게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노래 한 곡으로 마음을 대신했던 시간들. 오래된 노래는 그 시간을 함부로 잊지 않게 해 준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부정하지 않도록.
그래서 나는 오래된 노래를 아무 때나 틀지 않는다. 너무 자주 들으면, 그 안에 담긴 시간들이 가벼워질 것 같아서다. 정말 마음이 무너질 때, 말이 필요 없을 때, 조용히 재생한다. 그러면 그 노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흐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믿게 된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단단해진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래된 노래는 앞으로의 시간을 바꿔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게 해 준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 시절의 나도, 그때의 감정도, 모두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오래된 노래를 찾는다.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노래를 듣던 나를 함부로 잊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