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장|떠가는 배 한 척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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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ante sostenuto from String Quartet No. 2, Op. 10


목적지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안의 이름으로 불러오던 시절이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못하면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던 시간 속에서, 나는 자주 물 위를 떠올렸다. 닻을 내리지 않은 배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밀려가는 장면. 그 배는 늘 위태로워 보였고, 그래서 나는 그 배가 곧 침몰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미지는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졌다.

바다는 넓고, 배는 작다. 이 단순한 대비 앞에서 나는 여러 번 나를 재단했다. 작다는 이유로, 느리다는 이유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가 항구의 이름을 말할 때 나는 말문을 닫았다. 질문은 친절했지만, 그 친절은 자주 방향을 요구했다. 언제쯤이냐는 물음 앞에서 나는 시간을 잃었고, 어디냐는 물음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설명하지 못하는 삶은 곧 미완성으로 분류되었고, 나는 그 분류를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했다.

떠가는 배는 변명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기울고, 파도가 오면 젖는다. 그 단순한 반응 속에 오히려 선택이 있다. 맞서지 않겠다는 선택,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 나는 오래도록 그 차이를 혼동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멈춰야 한다고 믿었고, 멈춰 있으면 안전해질 거라 착각했다. 그래서 단단한 부두를 찾았고, 정확한 좌표를 외웠다. 닿고 나서야 알았다. 정박은 안식이 아니라 정지일 수 있다는 것을. 배는 고요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숨이 가빠졌다.

시간의 감각도 달라졌다. 항구에서는 시계가 크게 울렸고, 바다에서는 소리가 낮아졌다. 하루가 지나도 증명할 사건이 없었고, 며칠이 흘러도 보고할 성과가 없었다. 대신 아주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빛의 각도가 미묘하게 기울고, 물결의 결이 바뀌며, 공기 속에 다른 냄새가 섞였다. 나는 그 변화를 오래도록 의미 없는 것으로 분류했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가는 배는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분명히 이동하고 있었다. 지도에 남지 않는 경로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삶도 비슷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이동들이 있었다. 스스로에게조차 확신하기 힘든 변화들이 있었다. 떠가는 배는 그런 순간들의 은유처럼 물 위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지나온 시간이 있는데, 설명할 말이 없을 때. 그 시간들이 모여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실패로 묶어 두었지만, 배는 묶이지 않았다. 바람과 나란히 가는 법을 택했을 뿐이다. 맞서는 대신 방향을 조금 바꾸고, 속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폭풍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럴 때 배는 더 작아 보였고, 나 역시 흔들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마음이 또렷해졌다. 파도는 위협이면서 동시에 증거였다. 아직 물 위에 있다는 증거, 가라앉지 않았다는 증거. 모든 것이 안정적인 날보다, 위태로운 날에 더 선명해지는 감정이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을 위험하다고 불렀지만, 지금은 다르게 부른다. 살아 있다는 징후라고. 떠가는 배는 위험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어서 흔들린다.

누군가는 그렇게 떠다니다 보면 결국 아무 데도 닿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닿지 못하는 삶이 모두 실패는 아니다. 닿지 못했기에 보았던 풍경들이 있고, 머무르지 않았기에 지나칠 수 있었던 감정들이 있다. 목적지를 하나로 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능성을 접지 않은 채 물 위에 남아 있는 일. 떠가는 배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길을 하나로 좁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질문들 앞에서 침묵할 때가 많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방향들이 있고, 말로 만들지 않은 이유들이 있다. 예전의 나는 그 침묵을 부끄러워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말하지 않기로 한 선택도 선택이라고. 완전한 도착을 증명하지 않아도, 이동은 계속되고 있다고. 바다는 여전히 넓고, 배는 여전히 작다. 그러나 그 크기 차이가 더는 나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 숨 쉴 틈이 생긴다.

떠가는 배 한 척처럼, 나는 오늘도 완전한 정박보다 살아 있는 이동을 택한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파도가 오면 젖겠지만, 가라앉지 않는 한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아직 물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삶은 충분히 진행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