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얼굴로 젖어 있던 날들
추천 클래식
Phénix, rêverie orientale pour piano et orchestre, Op. 20 – Mel Bonis
청춘은 늘 맑은 얼굴로 시작하지만, 이상하게도 젖어 있다.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하늘 아래서도 마음은 먼저 축축해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옷자락처럼 따라붙는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성장통이라 불렀고,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하루를 건넜다. 지금에 와서야 알겠다. 그것은 여우비처럼,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형태였다는 것을.
여우비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햇살이 눈부신데도 가늘고 투명한 비가 떨어지고,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우산을 펼칠지 말지 망설이는 그 짧은 순간처럼, 청춘도 늘 선택의 틈에서 흔들린다. 젖을까 봐 피하기엔 이미 늦었고, 맞기엔 애써 태연한 척을 해야 하는 시간. 나는 그런 날들을 여러 번 통과했다.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젖어 있었고,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스스로를 속였다.
그 시절의 하루는 길고도 짧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다른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고, 밤이 되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낸 것 같았다. 잘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과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동시에 마음에 눌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청춘의 특권이라 여겼다. 불안해도 괜찮고, 미완성이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기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 많이 흔들렸고, 더 깊이 젖었다.
사랑은 특히 그랬다. 분명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이 어디까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함께 있을 때는 웃다가도 혼자가 되면 괜히 쓸쓸해졌고,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각자의 미래를 따로 상상했다. 우리는 서로를 붙잡는 법보다, 곁에 서 있는 법을 먼저 배웠다. 떠날 수도, 완전히 머물 수도 없는 사이에서, 비처럼 스며드는 감정만 남겨둔 채.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잘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고, 마음은 늘 앞서가는데 몸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자주 침묵했고, 침묵은 곧 오해가 되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고, 알아주지 않으면 혼자 서운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서툰 방식이었지만, 그 또한 청춘의 언어였다. 미숙해서 더 진했고, 조심스러워서 더 오래 남았다.
우리는 자주 실패했고, 그만큼 괜찮은 척을 했다. 넘어져도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너무 일찍 배운 탓에, 아프다는 말은 쉽게 꺼내지 못했다. 대신 웃음으로 덮고, 농담으로 흘려보냈다. 혼자 있을 때만 숨을 고르며 마음의 젖은 부분을 말렸다. 그 시간들이 쌓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괜찮은 척했던 날들이 사실은 가장 치열했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여우비가 내리던 날의 공기는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비는 차갑지 않았고, 햇살과 섞여 피부에 닿자 미지근한 온도를 남겼다. 청춘도 그랬다. 아프다고 말하기엔 아직 견딜 만했고, 행복하다고 부르기엔 어딘가 모자랐다. 우리는 그 애매한 경계에서 오래 머물렀다. 완전히 어른이 되지도, 그렇다고 아이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통과했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앞질렀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하루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선택 하나,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가 이후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놓고 있었다는 걸. 여우비가 그치고 나면 바닥에 남는 희미한 물기처럼, 청춘은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늘 어수선했고, 확신이 없었지만, 뒤돌아보면 그 시절의 하늘은 유난히 높았고 마음은 생각보다 용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도 앞으로 걸어갔고, 넘어질 걸 알면서도 한 발 더 내디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시간이었음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여우비를 맞으며 웃던 청춘은 아니다. 우산을 챙기는 법을 알게 되었고, 비의 방향을 가늠하는 요령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이유 없이 마음이 젖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안다. 아직도 내 안에 여우비의 청춘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맑은 얼굴로 시작했지만, 끝내 젖어버린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가끔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젖어 있다. 여우비의 청춘을 통과해 온 사람이라는 증거처럼. 그리고 그 젖음 덕분에, 나는 다음 계절로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