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허락하지 않아도, 존재는 이미 충분하다
추천 클래식
Charles Koechlin – Les Heures Persanes, Op.65: No.14 «Sieste, avant le départ»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를 긍정받아본 적 없이 어른이 된다. 잘했을 때는 칭찬을 받았고, 버텼을 때는 대견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저 존재하는 상태로 인정받은 기억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뒤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증명하려 든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조차 허락받지 못한 자리를 얻으려고 애쓴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이라도 나를 긍정해 본 적이 있었나.
나는 너를 긍정한다.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도록 나 자신에게 하지 못했던 고백이다. 긍정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다. 좋아한다거나 이해한다는 말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은 변할 수 있고, 이해는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만, 긍정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나 자신을 향해서는 더더욱.
우리는 늘 조건부로 자신을 평가한다. 오늘은 잘했는지,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남들 기준에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그 기준은 대부분 내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의 속도, 타인의 시선, 비교에서 태어난 잣대들이다. 그 잣대 앞에서 나는 늘 부족한 쪽에 서 있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망설였을까. 지나간 장면을 되감으며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판사가 되곤 했다. 변호인은 없었고, 휴정도 없었다. 판결은 늘 유죄였다.
나는 이제 그 재판을 멈추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잘하지 못해도, 버티지 못한 날이 있어도, 끝내 무너진 순간이 있었다 해도, 나는 너를 긍정한다고. 이 말에는 성과도, 결과도 필요 없다. 세상은 늘 이유를 묻지만, 이 문장은 이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었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여기까지 온 너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긍정은 응원이 아니다. 더 해낼 수 있다고 등을 떠미는 말도 아니고, 곧 괜찮아질 거라는 성급한 위로도 아니다. 긍정은 지금 이 상태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말하는 일에 가깝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재할 자격이 있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이 말은 조용하다. 박수도 없고, 환호도 없다. 대신 오래 남는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를 붙잡게 한다.
나는 너의 느린 속도를 긍정한다. 남들이 두 계단씩 오를 때 한 계단에서 숨을 고르던 시간들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밤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하던 순간들을. 그 느림이 너를 뒤처지게 만들었다고만 말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 느림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모두가 달릴 때 멈춰 서 있었기에,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하고 싶다.
나는 너의 흔들림을 긍정한다. 확신에 찬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고개를 숙이던 태도, 확답 대신 여백을 남기던 말투, 쉽게 단정하지 못하는 성격을. 흔들린다는 건 중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방향을 바꾸며 버텨온 나무처럼, 너는 늘 그렇게 서 있었다. 그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너의 상처를 긍정한다. 그 상처가 너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미화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 상처가 너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는 건 인정하고 싶다.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의 침묵을 함부로 해석하지 않게 되었으며, 웃음 뒤에 숨은 피로를 먼저 알아보게 되었다. 아픔은 자랑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을 섬세하게 만드는 흔적이 될 수는 있다. 너는 그 흔적을 안고 여기까지 왔다.
세상은 늘 명확한 답을 요구하지만, 너는 종종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은 오해를 불러왔고, 기회를 지나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 선택을 긍정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낸 것들이 있었고, 쉽게 말하지 않았기에 남아 있는 마음들도 있었다. 모든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어떤 감정은 그대로 두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나는 너의 오늘을 긍정한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 끝내 다 하지 못한 일들, 미뤄둔 마음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까지 포함해서. 오늘의 너는 어제보다 특별히 나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긍정은 발전의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지 못한 날에도, 존재는 허락되어야 한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선언이다. 그동안 나는 너무 쉽게 나를 부정해 왔다. 더 강해져야만, 더 단단해져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더 괜찮아 보여야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긍정은 그 모든 조건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오늘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오늘의 나는 부정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너를 긍정한다. 잘해서가 아니라, 견뎌서도 아니라, 그냥 너라서. 이 문장을 하루의 끝에 조용히 놓아본다. 당장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나를 부정하지 않고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긍정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존재를 허락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