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싫은 말투 앞에서
김치부침개를 먹고 있었다. 기름에 닿은 가장자리가 먼저 바삭해지고, 가운데는 아직 말랑한 채로 김을 올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할 때면 나는 대체로 괜찮아진다. 오늘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일도 없었고,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다. 그때였다. 내가 전화도 걸지 않았는데 전화가 이미 연결돼 있었다.
한참의 정적 끝에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 “아, 여보세요.” 짜증이 기본값처럼 깔린 톤. 이유도 맥락도 없이 그는 말을 끊었다. 통화 기록은 남지 않았다. 남은 건 오직, 잠을 확 깨울 만큼 선명한 불쾌함이었다.
그 목소리는 낯설었다. 처음 듣는 음색인데, 이상할 정도로 즉각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설명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찮음, 무례함, 상대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 논리로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종류의 에너지. 이런 목소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아무 일 아니라는 얼굴로, 그러나 듣는 사람의 밤을 가볍게 침범하는 톤으로.
예전의 나는 이런 순간 앞에서 자주 멈칫했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상황을 오해한 건 아닐까, 혹시 더 들어보면 달라질까. 그 질문들 때문에 내 접시는 식어갔다. 김치부침개가 아니라 내 기분이 먼저 차가워졌다. ‘별일 아니야’라는 말은 늘 상대를 위한 문장이었고, 그 문장을 반복할수록 나만 작아졌다. 그래서 불쾌함은 늘 사소한 감정으로 밀려났고, 사소하다는 이유로 가장 오래 남았다.
하지만 이 꿈에서, 나는 붙잡지 않았다. 그는 길게 말하지 못했고, 나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화는 시작되지 않았고, 기록은 남지 않았다. 그 짧은 구조가 오히려 분명했다. 불쾌함은 설명을 통해 해소되는 감정이 아니라, 경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사실. 우리는 왜 그 신호 앞에서 늘 이유를 찾으려 했을까. 왜 싫다는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배워왔을까.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 이유 없이 싫은 말투 하나가 하루의 결을 바꿔버리는 순간을.
이상한 건, 잠에서 깬 뒤에도 불안은 없었다는 점이다. 심장은 차분했고, 방은 조용했다. 남아 있던 건 찝찝함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아, 나는 이런 톤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리고 그 사실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구나.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먼저 선명해진다. 무엇을 더 견딜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더 이상 견디지 않겠는지가 기준이 된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특정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삶에서 제거해 온 태도의 집합이었다. 기본값이 짜증인 말투, 상대의 밤을 존중하지 않는 에너지, 설명을 요구받지 않으려는 무례함.
김치부침개는 여전히 맛있었다. 꿈속이었지만, 그 감각은 현실처럼 남아 있었다. 따뜻함은 유지됐고, 방해는 실패했다. 이 차이가 중요했다. 불쾌함이 있었다고 해서 평온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침범이 시도됐다고 해서 허락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잘 넘긴다’는 말을 ‘참아낸다’로 착각한다. 하지만 잘 넘긴다는 건, 끝까지 듣지 않는 선택일 수도 있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용기일 수도 있다.
왜 우리는 불쾌함 앞에서 늘 설명하려 했을까. 왜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라는 문장을 먼저 꺼냈을까. 그 문장은 상대를 보호하지만, 나를 보호하지는 않는다. 이 꿈이 알려준 건 단순했다. 불쾌함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기준이라는 것. 김치부침개를 먹고 있던 밤은, 이미 충분히 안정된 상태였다. 그래서 그 전화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잠을 깨우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나를 망치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꿈에 의미를 너무 부여한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의미는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남는 감정의 선명함에서 온다는 것을.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도 이렇게 싫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미 저런 태도를 삶에서 밀어내는 연습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속에서도 그는 설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말은 짧았고, 존재감은 더 짧았다.
밤은 다시 조용해졌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 꿈은 미래를 예고하지 않았다. 대신 현재를 확인시켰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고, 그래서 더 안전하다. 불쾌한 사람에게 이유를 요구하지 않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이제 나는 내 밤을 망칠 정도의 목소리에게, 더 이상 잠을 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