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서 있던 아이들

믿지 않기엔 너무 간절했던 이야기

by Helia

장사가 안 되던 엄마 가게 문 앞에, 어린아이 귀신 둘이 서 있었다고 한다. 손님이 못 들어오게 딱 지키고 있어서, 아무리 문을 열어놔도 장사가 될 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웃고 넘기기엔 이상하게 구체적이었고, 무시하기엔 너무 절박한 상황이었다. 미신이라는 단어가 늘 그렇듯, 그 말은 믿음과 의심 사이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요즘 엄마는 가게 걱정을 자주 했다. 문을 열고 앉아 있으면 시간만 흘러가고, 테이블은 쓸모없이 반짝였다. 손님이 없는 날의 가게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괜히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소가 된다. 왜 안 될까, 뭘 잘못했을까. 답이 없을수록 사람은 이유를 밖에서 찾게 된다. 메뉴도 그대 로고, 맛도 변하지 않았는데, 설명할 말이 없다는 게 제일 괴롭다고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문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고 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분명 손님 같았는데, 자리에 앉지도, 주문을 하지도 않았다. 가게 안을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더니, 마치 이미 알고 온 사람처럼 엄마를 보며 말을 꺼냈다고 했다. 자기는 무당은 아니라고, 다만 보이는 게 조금 있을 뿐이라고. 그 말투가 유난히 단정해서, 농담으로 받아치지도 못했다고 했다.
여자는 문 앞을 가리켰다. 그리고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신이 보이거든요. 어린애들 두 명이 문 앞에서

손님들 못 오게 막고 있으니 장사가 안될 수밖에요.”

그 순간 엄마는 웃어야 할지, 가만히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어린아이 둘이라니. 왜 하필 아이들이고, 왜 문 앞일까. 질문은 머릿속에서만 맴돌았고,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덧붙였다. 트리 장식은 치우고, 해바라기를 가져다 두라고. 크고 밝은 해바라기. 빛을 따라 고개를 드는 꽃. 말은 거기까지였고, 여자는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을 나섰다고 했다.

엄마는 그날 집에 와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믿기엔 너무 비과학적이고, 넘기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반신반의라는 말이 딱 맞았다. 믿지는 않지만, 안 믿기엔 너무 간절한 상태. 이유를 몰라 답답한 마음은, 결국 무엇이든 붙잡게 만든다. 엄마는 다음 날 화분을 하나 사서 가게 문 옆에 두었다. 트리는 치웠고, 해바라기는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란 얼굴이 문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손님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바글바글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고, 미신이라고 넘기기엔 결과가 너무 분명했다. 엄마는 웃으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 애들 귀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괜히 문 앞을 막고 있었던 걸까, 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미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미신은 귀신 이야기라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방식에 가깝지 않을까. 사람은 불안할 때 이야기를 만든다.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불안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 해바라기는 빛의 상징이고, 아이들은 미완의 상징이다. 그 여자는 어쩌면 귀신을 말한 게 아니라, 가게 앞에 쌓여 있던 정체된 기운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문 앞에 놓인 트리는 계절이 지난 장식이었고, 해바라기는 계절을 앞당긴 기대였다. 오래된 장식은 무심히 시선을 막고 있었고, 해바라기는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눈을 끌었다. 손님이 줄어든 이유를 귀신으로 설명하는 건 과장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무심코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그걸 잘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신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분명 있고, 그 틈에서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해바라기 하나로 가게의 공기가 달라졌다면, 그건 귀신이 나가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밝은 것을 문 앞에 두는 선택, 다시 문을 바라보는 태도, 잘될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기대. 그 모든 것이 이미 다른 행동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어린아이 귀신 둘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아이들은 종종 끝나지 않은 것의 얼굴로 등장한다. 오래 묵은 두려움, 체념, 잘될 리 없다는 생각. 엄마의 가게 문 앞에 서 있던 건 어쩌면 그런 마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 해바라기는 그걸 밀어내는 상징이었고, 동시에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였다.

미신은 믿음이라기보다 선택에 가깝다. 믿기로 선택하는 순간, 사람은 조금 다른 행동을 한다. 장식을 치우고, 화분을 사고, 가게를 다시 바라본다. 그 사소한 변화들이 겹쳐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미신은 늘 결과 뒤에 남는다. 맞았다고 말할 수 있게, 혹은 틀렸다고 웃어넘길 수 있게.

나는 여전히 귀신을 본다고 말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를 움직이게 했다면, 그 움직임이 삶을 조금 밝게 만들었다면, 그 이야기는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한 셈이다. 미신은 사실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불안한 마음이 건너갈 다리를 하나 내놓는다.
엄마 가게 문 앞에 놓인 해바라기는 오늘도 고개를 들고 있을 것이다. 손님을 부르는지, 빛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한 번쯤 붙잡는다. 그리고 그 짧은 멈춤이 문을 열게 만든다. 미신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틈에서 현실을 조금씩 밀어준다. 믿음과 의심 사이,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그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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