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안녕
작별인사는 늘 끝에 놓인 말이라고 믿었다.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된 뒤, 남은 공기를 정리하듯 조심스럽게 건네는 인사라고. 그래서 나는 작별을 미뤘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처럼, 아직 다음 장면이 이어질 것처럼 스스로를 속였다. 봄날의 벚꽃이 세 번 피는 날 만나기로 하고, 이쯤에서 헤어지자는 말은 그렇게 마음속에만 접어두었다. 말하지 않은 작별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오래 남아 시간의 안쪽에서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매일 작별을 연습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 연습이 작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밤, 굳이 묻지 않게 된 안부, 자연스럽게 바뀐 좌석 배치 같은 것들. 그 사소한 변화들이 쌓여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거리가 된다. 나는 그 거리를 인정하지 못해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혹시나 아직 남아 있을 온기를 확인하듯, 이미 식은 손잡이를 다시 잡아보며. 그러나 손의 기억은 마음보다 빠르게 식는 법이었다.
어릴 적에는 헤어짐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작별은 늘 눈물과 손짓, 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의 작별은 대개 소리가 없다. 끝이라는 말 대신 바쁨이 오고, 이해라는 이름의 침묵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서 빠져나간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과의 작별은 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덜 참았다면 달라졌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알게 된다. 어떤 관계는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방향의 차이로 끝난다는 것을.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어도, 바라보는 하늘의 높이가 다르면 결국 어긋난다는 것을. 작별은 패배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다만 그 선택이 늘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다.
나는 한때 간절히 원했던 미래와도 작별했다. 분명 손에 잡힐 것 같던 장면, 그 안에서 웃고 있을 나의 얼굴을 또렷이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풍경을 내밀었고, 나는 그 풍경 앞에서 잠시 멈췄다. 꿈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너무 단정해서, 나는 대신 꿈을 조용히 접어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접힌 자리에는 여전히 주름이 남아 있다. 그 주름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무언가를 원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작별은 남겨진 사람의 시간에서 더 오래 머문다. 떠난 사람은 이미 다음 계절로 넘어갔는데, 남은 사람은 아직 이전 날씨를 살고 있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듯, 같은 기억을 되짚으며 혹시 다른 결말은 없었을지 혼자 묻는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질문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작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끝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괜찮다는 말을 너무 빨리 꺼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작별은 잊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제자리에 두는 일이라는 것을. 미화하지도, 훼손하지도 않고 있었던 그대로 남겨두는 것. 그렇게 남겨진 기억은 상처가 아니라 흔적이 된다. 비 오는 날 젖은 신발 자국처럼, 사라지지는 않지만 걸음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말하지 못한 작별도 있다. 끝내 전하지 못한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사랑.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마음의 언저리를 맴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조용히 웃는 순간,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밤, 그 사람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게 되는 날. 그 모든 것이 작별의 다른 이름이다.
작별 앞에서 우리는 자주 약속을 만든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 약속이 지켜질지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약속을 남긴다. 약속은 재회의 보증이 아니라, 이별을 견디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해본다. 봄날의 벚꽃이 세 번 피는 날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이쯤에서 헤어졌다고. 그 말속에는 다시 만남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의 작별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 숨어 있다.
계절은 늘 돌아오지만, 같은 벚꽃은 다시 피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해마다 같은 자리를 찾는다. 아마 작별도 비슷할 것이다. 같은 형식으로 반복되지만, 매번 다른 마음을 남긴다. 그래서 작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덜 두려워질 뿐이다.
작별인사는 결국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이다. 떠난 것을 붙잡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결심, 남겨진 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태도.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작별을 품고 다음 날로 걸어간다. 언젠가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어도, 그 작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음을 인정하며. 작별은 끝이 아니라, 나를 조금 다른 내가 되게 하는 문장이다. 오늘의 나는 그 문장 끝에 조심스럽게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속으로, 잘 가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