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지 않은 것들의 생, 아직이라는 이름의 시간

아직이라는 이름의 시간

by Helia

여물지 않은 것들의 생, 아직이라는 이름의 시간
우리는 늘 아직인 채로 산다. 다 크지 못한 마음, 덜 익은 선택, 미완의 오늘을 안고서. 서둘러 어른이 된 척 웃다가도 밤이 되면 다시 흔들리는 마음을 주워 담는다. 여물지 않은 것들의 생은 언제나 중간쯤에서 숨을 고른다. 끝내 익지 못한 사과가 가지에 매달린 채 바람을 맞듯,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건넌다. 성숙을 약속받지 못한 시간은 늘 불안한 빛을 띠고, 아직은 말이 덜 익어 혀끝에서 맴돈다. 마음은 제 온도를 찾지 못해 자주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삶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완성된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흠집 없는 문장처럼 반듯하게, 결론이 선명한 이야기처럼. 그러나 삶은 늘 초고에 가깝다. 지우개 자국이 남아 있고, 문단 사이가 헐겁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수정하며 살아가고, 내일의 나는 오늘을 다시 고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주 미끄러진다. 미숙한 선택으로 길을 돌아가고, 서툰 말로 마음을 상하게 한다. 여물지 않은 판단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는 결국 배움의 결이 된다. 완성은 멀리 있고, 우리는 늘 다듬는 중이다. 그래서 삶은 늘 진행형이고, 진행형이기에 살아 있다.

여물지 않은 생의 표정은 종종 불안으로 오해받는다. 주저함, 망설임, 뒤늦은 후회 같은 것들. 하지만 그것들은 성장의 징후다. 뿌리가 얕을 때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자리를 찾는다. 흔들림이 없다면 뿌리는 단단해질 수 없다. 우리는 흔들리는 동안 무엇이 중요한지 배운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어느 방향의 빛이 자신을 살게 하는지. 여물지 않은 마음은 빛에 민감하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본다. 상처를 통해 감각은 또렷해지고, 그 감각은 다음 선택의 나침반이 된다.

어린 열매는 햇볕을 오래 바라본다. 서둘러 익으려 하지 않는다. 계절이 다하면 스스로 색을 바꾸듯, 사람의 생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 남들보다 늦게 피는 꽃이 있고, 오래 피는 꽃이 있다. 비교는 늘 성급하다. 타인의 결실을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하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계절을 탓하게 된다. 여물지 않은 나날을 실패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자기 삶의 시간을 배반한다. 아직이라는 말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가능성은 불안과 함께 오지만, 불안은 동시에 길의 존재를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아직이라는 말 앞에서 스스로를 재촉하던 날들을 떠올린다. 충분히 자라지도 않았으면서 이미 결론에 도착해야 할 것처럼 굴었던 시간들. 더 빨리, 더 잘, 더 완벽하게라는 말들이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숨을 막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여물지 않은 상태를 견디지 못해 자신을 몰아붙일수록 삶은 더디게 흘렀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법을 배운 뒤에야, 비로소 시간이 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미숙함은 종종 부끄러움으로 포장된다. 잘 모르는 것을 감추고, 틀린 선택을 숨기며, 모호한 감정을 외면한다. 그러나 여물지 않은 생은 솔직할 때 가장 강하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아직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정직함이 삶을 앞으로 밀어준다. 모름을 인정하는 순간 질문이 태어나고, 질문은 길을 연다. 길은 늘 질문에서 시작된다. 답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가 결국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간다.

사랑도 다르지 않다. 완벽한 사랑은 이야기 속에만 있다. 현실의 사랑은 덜 익어 자주 상처를 준다. 표현은 늦고, 이해는 더디다. 그러나 그 서툼이 관계를 자라게 한다. 서로의 미숙함을 견디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넓어진다. 여물지 않은 사랑은 불안하지만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한다는 뜻이고, 변한다는 것은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덜 익은 마음으로 건넨 말 한마디가 오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 오해를 풀어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된다.
일도, 꿈도, 신념도 한 번에 여물지 않는다. 시작은 언제나 투박하다. 첫 문장은 어색하고, 첫걸음은 비틀거린다. 그러나 그 투박함이 없으면 다음 문장은 오지 않는다. 여물지 않은 시도는 실패로 보이기 쉽지만, 사실은 축적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근육이 붙고, 감각이 자란다. 우리는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지만, 생은 과정 속에서 자란다. 과정은 느리고 불확실하지만, 그 불확실함이 삶을 살아 있게 만든다.
여물지 않은 것들의 생은 시간을 믿는다. 오늘의 부족함이 내일의 재료가 된다는 믿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 익음은 강요로 오지 않는다. 햇볕과 비와 바람이 제때 찾아올 때, 자연스럽게 도착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혹독하게 다그칠수록 삶은 메말라간다. 여백을 허락할 때 비로소 생은 숨을 쉰다. 숨을 쉰다는 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두는 일이다.

완성은 도착이 아니라 통과다. 잠시 머무는 지점일 뿐, 우리는 다시 다음의 미완으로 나아간다. 여물지 않은 상태로 사는 일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고, 아직 갈 길이 있다는 신호다. 여물지 않았다는 말은 실패가 아니라, 아직의 다른 이름이다. 완성되지 않은 오늘이 내일을 키운다.

여물지 않은 것들의 생은 조용히 말한다. 지금의 너도 충분하다고. 덜 익은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고.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도 열매는 자라고 있다고. 그러니 서둘러 색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자신의 계절을 믿으라고. 아직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시작이 들어 있다. 우리는 그 시작 위에서, 오늘도 여물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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