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보다 먼저 도착한 걱정들
합격했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축하보다 먼저 걱정이 도착했다. 아직 개강도 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기말시험 문제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객관식일까, 서술형일까. 온라인 수업이라더니 왜 대면이라는 말이 따라붙을까. 합격이라는 단어가 화면에 뜨는 순간, 나는 기쁨 대신 질문을 받아 들었다. 이게 정말 시작이라면, 왜 이렇게 무서울까.
국문과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마음은 자꾸 앞질러 갔다. 등록금은 제대로 납부된 게 맞는지, 가상계좌 수취인명에 내 이름과 학교 이름이 함께 뜬 화면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안도했다가 다시 불안해졌다. 반영이 안 됐다는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이미 끝난 선택을 되감기처럼 반복했다. 합격은 통과증이 아니라 점검표 같았다. 하나를 통과하면 또 하나의 확인이 따라왔다.
온라인 수업이라고 생각했던 기대도 그 과정에서 조금씩 어긋났다. 완전한 비대면을 상상했는데, 대면과 혼합이라는 단어가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화면 속 수업만 떠올리던 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다시 멈췄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게 어렵다. 말이 나오기 전에 생각이 먼저 엉키고, 입을 열면 버벅거린다. 글은 혼자서 천천히 써왔지만, 말은 늘 나를 배신했다. 그래서 수업 내용보다 수업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질문을 받으면 어쩌지, 발표를 시키면 어떻게 하지. 합격은 내 약점을 정확히 겨냥해 문을 열어젖힌 느낌이었다.
기말시험도 마찬가지였다. 형식이 무엇이든, 결국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었다. 서술형이라면 생각을 정리해 써야 하고, 객관식이라면 외워야 한다. 문제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 내가 학생이라는 사실이 공식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좋아서 읽고 쓰던 시간은 취미였는데, 이제는 성적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다. 합격은 좋아하던 일을 책임지는 자리로 옮겨놓았다. 그 무게가 생각보다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걱정이 나를 뒤로 물러서게 하지는 않았다. 불안은 계속됐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견뎌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자주 고개를 들었다. 합격은 갑자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이미 글을 쓰며 혼자 버텨온 시간이 있었고, 답이 없는 질문을 붙잡고 살아온 날들이 있었다. 학교는 그 질문들을 틀렸다고 말하는 곳이 아니라, 질문해도 되는 자리로 공식화해 주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온라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대면 수업이 몇 번 있다면, 그날 하루만 견디면 된다고. 말이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다고. 모두가 말을 잘하기 위해 학교에 오는 건 아니니까. 기말이 서술형이면, 내가 늘 해오던 방식으로 생각을 적으면 되고, 객관식이면 아는 만큼 해보면 된다고.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불안의 크기를 조절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합격 이후의 삶은 걱정이 사라지는 삶이 아니라, 걱정과 함께 움직이는 삶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개강 전에 앞당겨진 이 모든 걱정은 예행연습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수없이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이 선택이 맞을까,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 또다시 버벅거리지는 않을까. 합격은 그 질문들을 끝내주는 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허락하는 단어였다. 그래서 합격이라는 말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국문과 합격은 나를 들뜨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나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읽게 될 문장들,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을 문장들, 끝내 내 것이 되지 않을 문장들까지 포함해서, 나는 이제 그 세계의 입구에 서 있다. 여전히 걱정은 많고, 수업은 완전한 온라인이 아니며, 기말시험의 형식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이 합격을 축하보다 먼저 고민으로 받아들였고, 그만큼 이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격은 완성의 증명이 아니라, 불안한 상태 그대로도 시작해 보겠다는 선택이다. 말이 느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 없고, 모든 걸 미리 걱정하는 사람이라도 배울 자격은 충분하다는 확인이다. 그래서 나는 이 합격을 붙잡기로 했다. 준비가 덜 된 마음으로, 흔들리는 상태로, 그래도 들어가 보겠다고. 합격은 나를 안심시키는 말이 아니라, 계속 가보라고 등을 떠미는 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