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방향은 안다
요즘의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을 건너는 중이다. 잘 버티고 있다는 말 말고는 나를 설명할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날들이 이어진다. 이유를 묻는 질문들 앞에서 설명을 고르는 대신, 그냥 하루를 통과하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선택한 시간들이 어느새 사막의 한복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고, 방향만 겨우 붙들고 걷는 자리.
사막에서의 햇살은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숨김없는 질문에 가깝다. 이 빛 아래에서도 계속 걸을 수 있느냐고, 그늘 없이도 너 자신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은 오래가지 않는다. 조금 전의 확신도 금세 흐려지고, 방금의 다짐마저 바람에 쓸려간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남기는 일보다 지나가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다만 다음 발을 내딛는 것.
햇살은 따뜻하다기보다 날이 서 있다. 눈을 가늘게 뜨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든다. 그 빛 아래에서 나는 물을 아낀다. 말도 아낀다. 사막에서는 불필요한 모든 것이 짐이 된다. 과한 설명, 넘치는 감정, 미리 앞서간 걱정들.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수록 몸은 가벼워진다. 가벼워질수록 방향은 또렷해진다. 삶도 그와 닮아 있다. 버텨야 할 때는 늘 덜어내는 쪽이 정답에 가깝다.
오아시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그쪽을 향하고 있다. 수평선 너머에 있을 물의 온도, 그늘의 밀도, 바람이 달라지는 순간을 상상한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오아시스는 실재라기보다 믿음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보이지 않기에 흔들리기도 쉽지만, 동시에 없다고 단정할 수 없기에 계속 걷게 만든다. 믿음이란 결국, 확신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이곳에서 배운다.
정오는 가장 힘든 시간이다. 모든 것이 과장 없이 드러나는 순간, 숨길 수 있는 그늘이 사라진다. 변명도, 미루기도 통하지 않는 시간. 그때마다 나는 멈추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른다. 사막에서는 도망이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멈추거나, 가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거리만 계산한다. 내일의 오아시스를 앞당겨 그리지 않고, 오늘의 발걸음만큼만 책임지는 쪽을 택한다.
모래를 밟으며 걷다 보면, 물이 풍족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늘이 당연했고, 햇살을 배경으로만 여기던 날들. 넘치는 것들은 늘 중심에 오르지 않는다. 부족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사막은 결핍을 확대하는 장소다. 동시에 내가 무엇에 기대어 살아왔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물이 없을 때는 방향에 기대고, 그늘이 없을 때는 리듬에 의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기대는 법을 배운다. 강해서가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아시스를 향한다는 말은 도착을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다. 결과가 아니라 태도를 선택하는 일. 사막에서는 그 차이가 생존과 직결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가겠다는 욕심 대신, 오늘은 이만큼만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 그렇게 하루를 접었다가 다시 펼친다. 느려 보일지라도 이 속도는 나를 지치지 않게 한다. 빨리 가는 길보다, 끝까지 가는 길을 택하고 싶어서.
그래서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 걷기로 했다.
햇살 아래에서 나는 불필요한 것을 더 벗겨낸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남은 것은 단순하다. 방향과 호흡, 그리고 아직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 사막에서의 햇살은 나를 태우는 동시에 단련한다. 타오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드러내고, 꼭 필요한 감각만 남긴다. 그렇게 남은 마음은 가볍다. 가볍기에 흔들려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어느 순간, 빛의 결이 달라진다. 모래 위의 반사가 조금 부드러워지고, 바람이 미세하게 다른 냄새를 싣고 온다. 아직 그늘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안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오아시스는 늘 그렇게 다가온다. 끝까지 모습을 숨기다가, 마지막 몇 걸음에서야 존재를 허락한다. 그래서 사막을 건너는 일은 늘 믿음의 총량을 시험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얼마나 스스로를 놓치지 않았는지를.
사막에서의 햇살은 잔인할 만큼 정직하다. 오아시스를 향한 길은 멀고 단조롭지만 거짓이 없다. 나는 그 사이를 걷는다. 타오르는 빛과 아직 닿지 않은 물 사이에서, 오늘의 선택을 반복하며. 언젠가 그늘에 닿더라도, 나는 이 햇살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밀어온 것이 결국 이 빛이었음을, 그 빛 아래에서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래도 방향만은 분명히 붙든 채, 오아시스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