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밝아서 사라진 빛에 대하여
반딧불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나는 끝내 떠올리지 못한다. 분명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장면을 정확히 붙잡으려 하면 기억은 손바닥 사이로 흘러내린다. 여름이었는지, 누군가 곁에 있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남아 있는 건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이 잠깐 켜졌다 사라졌다는 감각뿐이다. 그것이 실제의 기억인지, 오래된 이야기에서 옮겨온 장면인지도 모호하다. 이상하게도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그 빛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사라졌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걸, 반딧불은 그렇게 먼저 알려준 셈이다.
내가 사는 인천에서는 반딧불이를 본다는 일이 쉽지 않다. 도시의 밤은 늘 밝고, 어둠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한다. 가로등은 밤새 꺼질 줄 모르고, 창마다 각자의 하루가 불빛으로 흘러나온다.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 대신, 다른 종류의 낮이 시작되는 곳. 이런 곳에서 반딧불은 설 자리가 없다. 너무 많은 빛 속에서는, 너무 작은 빛이 태어나기도 전에 지워진다. 그래서인지 반딧불은 기억 속에서도 늘 가장자리에 머문다. 중심에 서지 않고, 정확히 설명되지 않으며, 좌표를 갖지 않는다.
도시의 밤은 환하다. 하지만 환하다는 말이 반드시 따뜻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인천의 밤을 오래 바라보면, 불빛은 넘치는데 고요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드러난 밤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그림자마저 또렷해지는 세상에서, 작은 빛은 쉽게 묻힌다. 반딧불은 경쟁하지 않는 빛이기 때문이다. 더 밝아지려 하지 않고, 오래 남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켜질 시간에 켜지고, 사라질 때가 되면 사라진다. 도시의 불빛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 있는 존재다.
가끔은 이 많은 불빛 가운데 정말 필요한 빛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길을 밝히는 빛과 마음을 밝히는 빛은 과연 같은 것일까. 반딧불을 떠올리면, 그 질문은 조금 더 분명해진다. 반딧불의 빛은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아직 어둠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해준다. 방향이 아니라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빛.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살다 보면 반딧불 같은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 무심히 건넨 말 한마디, 우연히 스친 시선, 뜻밖에 마음에 남은 문장 하나. 그 순간들은 오래 붙잡히지 않는다. 기록하려 하면 이미 지나가 있고, 설명하려 하면 감정이 먼저 식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사소하다고 부른다. 하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거대한 조명보다 그런 사소한 빛 하나에 더 의지하게 된다. 삶이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처럼.
반딧불의 빛은 스스로를 태워 만드는 불이 아니다. 안에서 생겨나지만 소모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빛에는 비장함이 없다. 증명하려는 의지도, 과시하려는 욕망도 없다. 살아 있기 때문에 켜지고, 켜졌기 때문에 살아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종종 빛나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산다. 눈에 띄어야 하고, 남아야 하며, 설명해야 안심한다. 그러나 반딧불은 말없이 알려준다. 빛남은 목표가 아니라 상태일 수 있다고,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다고.
도시에서 반딧불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이 필요하다. 불빛이 적은 곳, 소음이 가라앉은 자리, 밤이 밤으로 남아 있는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둠을 허락해야 한다. 너무 밝은 세상은 작은 빛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음도 그렇다. 늘 괜찮은 얼굴로, 늘 밝은 말로 채워진 마음에는 반딧불이 머물 자리가 없다. 일정한 어둠이 남아 있어야, 작은 위로가 도착할 틈이 생긴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안의 반딧불은 어디쯤일까. 꺼진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직 켜질 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인지. 살아가다 보면 더 이상 반짝일 힘이 없다고 느끼는 날들이 온다. 이미 충분히 많은 밤을 건너왔다고, 이제는 빛날 차례가 지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반딧불을 떠올린다. 낮에는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생명, 어둠이 와야 비로소 드러나는 빛. 혹시 지금은 낮이어서 보이지 않을 뿐, 밤이 오면 다시 켜질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숨이 트인다.
반딧불을 오래 떠올리고 있으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급하게 흘러가던 생각들이 느슨해지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잠시 뒤로 물러난다. 빛이 켜졌다 꺼지는 간격에 호흡을 맞추다 보면, 삶도 그런 리듬으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켜져 있지 않아도, 계속 빛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만 잠깐씩. 오히려 늘 환하게 타오르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밤에 남아 있을 불씨가 사라진다.
반딧불은 말이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오래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 모든 것을 밝혀야만 안전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 사라짐이 곧 실패는 아니라는 이야기. 인천의 밤에는 여전히 반딧불이 없다. 그러나 나는 요즘, 이 도시의 밤을 조금 덜 밝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다 보이지 않아도 되는 하루,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으로. 어둠을 조금 남겨두는 용기 속에서, 언젠가 반딧불 하나쯤은 다시 켜질지도 모른다. 너무 작아서 놓칠 수는 있어도, 분명히 있었음을 믿게 만드는 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