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지 않기로 한 마음에 대하여
나는 끝내
이 밤을
다 쓰지 못했다
말을 모아
한 줄씩 세우면
이 밤이
내 것이 아닐 것 같아서
쓰지 못한 것은
부족함이 아니었다
망설임도 아니었다
이 밤은
너무 조용히
나를 닮아 있었고
나는
닮은 것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다
종이 앞에 앉아
나는 여러 번
첫 문장을 생각했다
그러나 문장은
생각보다
항상 늦게 왔다
오히려
침묵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말을 쓰기 전
이 밤은
이미 충분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글자로 옮기지 않기로 했다
쓰는 순간
이 밤이
다른 얼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름 붙여진 밤은
더 이상
밤이 아니어서
나는
이름 붙이지 않음으로써
이 밤을
지키고 싶었다
등불 아래에서
펜은
여러 번 종이를 스쳤으나
끝내
머물지 않았다
머무르지 않음 또한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 밤에서
나는 배웠다
다 쓰기에는
이 밤이
너무 나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남기는 순간
이 밤은
나에게서 멀어질 것 같았고
나는
멀어지지 않게 하려고
차라리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빈 종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말들이
겹쳐 앉아
서로를
밀지 않고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말은
쓰일 때보다
쓰이지 않을 때
더 오래 머문다는 것을
나는
이 밤을 통해
천천히 알게 되었다
이 밤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비로소
나의 것이 되었고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나는
이 밤을
가슴에 접어 두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그대로 두기 위해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말보다 깊은
상태라는 것을
이 밤은
나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울지도
말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이 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다 쓰지 못한 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쓰이지 않은 채
나의 침묵으로 남아
다음 밤까지
나를 밝힌다
나는
이 밤을
다 쓰지 못했지만
이 밤은
나를
끝까지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