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마음에 대하여
그날 밤
나는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종이 위에 앉은 말들은
제자리에서 숨을 고르다
서로를 바라본 채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펜을 쥔 손은
무언가를 시작하려다
조용히 멈추었고
나는
쓰지 못한 문장들 사이에서
자꾸만 숨이 얕아졌다
말이 오기 전
울음이 먼저 왔다
생각보다 먼저
의미보다 먼저
마치 오래전부터
이 밤을 기다려왔다는 듯
어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이유 없는 슬픔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왜 지금인지
왜 하필 이 밤인지
다만
눈물이 흘러갈 자리를
조금 비워두었다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이
그 밤에는
울음으로만 남아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창밖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로등이 서 있었고
그 빛 아래서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울음은
부끄러움과 함께 왔고
그 부끄러움은
나를 더 숨기기보다
오히려
나 자신을
가만히 마주 보게 했다
나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울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덜 거짓되게 만들었다
그동안
문장으로만 설명하려 했던 마음들이
그날 밤에는
설명 없이도
스스로를 드러냈다
말이 앞서면
마음이 늦어지고
울음이 앞서면
비로소
정직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는
그 밤에서 배웠다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빈 종이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 침묵이
이전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울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말보다 정확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문장을 쓰겠지만
그 문장들은
그 밤의 울음을
흉내 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기억할 것이다
말보다 먼저 울었던 순간이
내 삶의 한가운데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 밤만큼은
울음이
나의 가장 솔직한 글이었고
나는
그 글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