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더 이상 순하지 않다
동화를 비틀어 범죄 현장 위에 올려두면 어떤 표정이 나올까. 나는 이 영화가 그 질문에 대해 아주 장난스럽고도 뻔뻔한 얼굴로 대답한다고 느꼈다. 망설임 없이 숲을 가로지르는 빨간 망토, 반짝이는 드레스 자락에 묻은 흙먼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 놓인 차가운 시신. 낭만은 유리잔처럼 깨지고, 유머는 칼날처럼 반짝인다. 처음엔 가벼운 패러디쯤으로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이건 생각보다 집요하다. 동화의 살결을 빌려와 추리의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풍자를 얹는다. 웃으면서 보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당황스러움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인물들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순진해야 할 캐릭터는 생각보다 영리하고, 우아해야 할 인물은 의외로 허술하다. 그 틈에서 웃음이 터진다. 나는 그 어긋남이 좋았다. 동화 속 세계는 늘 선명한 선으로 구분되어 왔는데, 이 작품은 그 선을 일부러 번지게 만든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구원받는 사람, 벌 받는 사람. 그렇게 단정하던 구도가 서서히 흐려진다.
특히 빨간 모자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사건을 따라가는 눈빛이 또렷하다. 어른들의 세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 점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로만 소비되기엔 아깝다고 느꼈다. 동화 속 소녀가 탐정처럼 움직이는 순간, 이야기는 장르를 슬쩍 넘어선다. 망토는 장식이 아니라 선언처럼 보인다. 나를 지키겠다는, 혹은 진실을 보겠다는.
물론 아쉬움도 있다. 이야기의 전개가 때로는 너무 친절하다. 반전이 나오기 전, 이미 관객에게 눈치를 준다. 그래서 놀라움이 반감된다. 범인을 향한 단서들이 다소 노골적이다. 나는 조금 더 숨겨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을 믿고 한 발 물러났다면 더 짜릿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다. 끝까지 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비주얼은 화려하다. 색감은 동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선명하고, 의상은 과장될 만큼 반짝인다. 그 과잉이 오히려 의도적으로 느껴진다. 현실과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처럼. 피가 튀는 장면조차 어딘가 만화적이다. 잔혹함을 희석시키는 방식이 독특하다. 나는 그 선택이 현명했다고 본다. 이 영화는 공포를 주기보다 상황의 아이러니를 즐긴다.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알고 있던 ‘행복한 결말’에 대한 태도다. 동화는 늘 끝이 분명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결말마저 장난감처럼 다뤄진다. 왕자와 공주가 만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유리구두가 꼭 맞는다고 해서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 익숙한 설정을 하나씩 건드리며 질문을 남긴다. 정말 그렇게 단순했을까, 우리가 믿어온 이야기는.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묘하게 통쾌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이 사실은 얼마나 폭력적인 구조였는지, 얼마나 일방적인 권선징악이었는지 떠올랐다. 그 세계를 이렇게 비틀어버리는 방식이 반가웠다. 동시에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어 좋았다.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허무하지도 않다. 균형을 잡으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연기 역시 캐릭터의 결을 잘 살린다. 과장된 몸짓과 표정이 이 세계관과 어울린다. 현실적인 톤으로 연기했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모두가 조금씩 연극 무대에 올라선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설정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마음껏 논다.
결국 이 영화는 완벽한 추리물도, 깊은 사회 비판도 아니다. 대신 동화를 해체하는 유쾌한 실험에 가깝다. 나는 그런 시도가 반갑다. 익숙함을 그대로 두지 않는 태도, 이야기의 공식을 의심하는 시선. 그게 이 작품을 기억하게 만든다. 화려한 색채와 장난기 어린 대사 뒤에, 은근히 날 선 질문이 숨어 있다.
숲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왕궁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빨간 망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나는 그 뒷모습이 오래 남았다. 동화를 믿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 태도. 그 모순 위에서 이야기는 웃으며 끝난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알고 있던 결말은 정말로 해피엔딩이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