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리지 않는 쪽을 고르는 법
나는 늘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서 있었다.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할수록 어깨는 굳었고, 말은 짧아졌다. 마음을 숨기는 일에 능숙해질수록 나는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숨이 막혔다. 버티는 법은 익숙했으나, 풀어놓는 법은 좀처럼 배우지 못했다.
봄이 오면 이상하게도 시선이 위로 향했다. 건물 사이로 흘러드는 옅은 분홍빛을 보면 발이 멈췄다. 어느 오후, 사람들로 붐비는 길가에서 나만 혼자 멈춰 서 있던 날이 있다. 바람이 지나가자 가지 끝에서 무언가가 흩어졌다. 어깨에 내려앉은 꽃잎을 손으로 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사라질 것을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때 처음으로 몸 안에 들어왔다.
훗날에 나는, 벚꽃이 되리라. 이 말은 환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게를 조금 덜어내겠다는 결심이다. 매달리지 않는 쪽을 고르겠다는 태도다. 쥐고 있어야 안심하던 습관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조이는 힘을 풀어보겠다는 선언.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돌처럼 다뤘다. 상처가 나면 덮어두었고, 서운함이 올라오면 다른 생각으로 눌렀다. 그러다 보니 속에서는 늘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겨울을 오래 품은 나무처럼, 겉은 멀쩡해도 안쪽은 갈라져 있었다. 그런데 봄마다 그 나무는 아무렇지 않게 새 잎을 내밀었다. 지나온 계절을 변명하지 않고, 다만 다음 장면으로 건너갔다. 그 건너감이 부러웠다.
꽃은 피는 순간부터 떨어질 준비를 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피어 있을 뿐이다. 떨어질 때가 오면 떨어질 뿐이다. 미리 겁먹지 않고, 미리 움켜쥐지 않는다. 나는 그 태도를 배우고 싶다. 끝을 계산하며 시작을 줄이지 않는 자세. 사라질 걸 알면서도 전부 내어놓는 배짱.
어느 날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막 헤어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손에 쥔 휴대폰은 무겁고, 발걸음은 자꾸 뒤로 당겨졌다. 그때 꽃잎 몇 장이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조용히. 나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누군가의 위로보다, 그 무심한 내려앉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말없이 스치는 것이 꼭 무심한 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더 이상 단단함을 자랑하지 않으려 한다. 강해 보이기 위해 이를 악물던 버릇도 조금씩 놓아보려 한다. 대신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억울함을 바로 되갚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가벼움은 가벼워 보이려는 몸짓이 아니다. 스스로를 쥐고 있던 손을 푸는 일이다.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살짝 떨어진 듯한 감각으로 하루를 건너는 것.
사람은 나무가 아니라서 한 자리에만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마음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미움이 남긴 흔적을 하나씩 닦아내는 중이다. 오래 붙들고 있던 장면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굳이 되감지 않으려 한다. 떠난다는 건 도망이 아니라, 나를 덜 다치게 하는 자리로 옮겨 앉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훗날에 나는, 벚꽃이 되리라.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박히지 않아도 괜찮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으로 충분하다. 어깨 위에 잠시 내려앉았다가, 손끝에서 조용히 흩어지는 존재. 이름을 크게 남기지 않아도, 그날의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붙잡히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 그리고 무엇도 함부로 붙들지 않겠다.
당신도 한 번쯤, 놓아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