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침묵이 나를 지켜주던 날

말하지 않기로 한 이유

by Helia

그날은
말보다 침묵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조용해졌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어느 것 하나를 고르는 순간
다른 마음이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입술은 몇 번이나 열렸으나
문장은
목울대 아래에서
조용히 멈추었다

나는 서 있었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그러나 속에서는
여러 개의 계절이
서로를 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의 침묵은
겁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패배라 부르지 않겠다

침묵은
조급함을 걷어내고
내 안의 소리를 끝까지 듣게 하였다

말은 때로
앞서 나가고

마음은
그 뒤에서
헐겁게 남는다

나는
그 헐거움을 겪고 나서야
조금 느리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날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기에
흩어지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기에

낡아지지 않은 마음 하나가
가슴 안에 남아 있었다

그 마음은
누군가의 판단 속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섣부른 이해에
닳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드러내는 용기만이
용기는 아니라는 것을

지키는 결심 또한
하나의 힘이라는 것을

아마 우리도
그런 날을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한 말

그 말을 삼킨 채
밤을 건너던 순간

그리고
아침이 되어
비로소 안도하던 기억

나는 집으로 돌아와
창을 열었다

바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는 그 앞에서
처음으로 안심하였다

침묵이 길어지던 날은
비어 있는 날이 아니었다

그날은
내가 나를 함부로 내주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슬픔도
서운함도
기대도

조금 더 안쪽에서
스스로의 온도를 갖도록 둔다

말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침묵은
나를 향해 돌아온다

그날 나는
나를 향해 서 있었다

누군가는
침묵을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말보다 늦게 오는 진심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날의 나는
조용했지만

결코 약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흩어지지 않았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잃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안다

모든 질문에
즉시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모든 진심이
곧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몇 개의 문장을 삼켰다

그 문장들은
종이 위에 남지 않았으나

내 안에서
천천히 자라난다

침묵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한다

나는 믿는다

조용히 지켜낸 하루가
소리 내어 외친 하루보다
더 깊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오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말이 늦어도 괜찮다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의 침묵은
지금도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그것은
나를 지켜낸 하루로
아직도
조용히 나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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