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던 사람은 끝내 오지 않았다
온다던 사람은 끝내 오지 않았다
“못 갈 것 같아.”
그 한마디면 됐을 텐데.
나는 50분을 기다렸다.
정확히는 5시 40분에 통화를 끊었고, 6시 34분이 되었을 때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수봉공원 입구 근처 벤치에 앉아, 괜히 발끝으로 바닥을 긁다가, 다시 일어나 몇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같은 자리에 오래 서 있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기다림이 더 선명해지니까, 몸이라도 움직여서 시간을 흐리려는 습관 같은 것.
그날 나는 원래 혼자 산책을 나갈 생각이었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 봄 저녁은 집 안에 머물기엔 아까웠고, 수봉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딱 그 정도의 거리였다.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적당히 숨이 차오를 즈음 도착하는 곳. 익숙해서 편하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괜찮은 길.
그때 들은 말이 있었다.
“나 수봉공원 간다.”
그 문장은 짧았고, 아무 설명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귓속에 오래 남았다. 간다는 말. 도착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은 말. 그리고 도착은, 만남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말.
나는 그 문장을 너무 곧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집을 나섰다. 사실은 나도 갈 예정이었으니까, 별일 아닌 것처럼. 우연히 같은 장소에 도착하는 두 사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현실에 슬쩍 얹어본 셈이었다. 별거 아닌 기대였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커질 줄은 몰랐다.
처음 10분은 아무렇지 않았다.
다음 10분도 괜찮았다.
30분이 넘어가자, 슬슬 핸드폰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메시지는 없었다.
‘오는 중이겠지.’
‘길이 막혔을 수도 있지.’
‘조금 늦는 걸 수도 있지.’
사람은 이유를 만드는 데 능하다. 특히 기다릴 때는 더 그렇다. 아무 말도 없는 상황을, 스스로 해석해서 견딜 수 있게 바꾸는 일. 그건 어쩌면 기다림의 본능 같은 거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이유를 붙여도, 단 한 줄의 메시지를 대신할 수는 없다.
“못 갈 것 같아.”
그 한마디.
그게 없다는 사실이, 시간을 조금씩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산책하는 커플,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 그들은 다 각자의 속도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누구도 멈춰 서 있지 않았다. 오직 나만, 보이지 않는 약속 하나에 묶여 있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온다고 했으면 와야지.
그 생각이 처음 떠올랐을 때는 가벼웠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불만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장은 점점 단단해졌다. 온다더니 안 오는 사람. 그걸 기다리는 나. 이 상황이 조금씩 우스워졌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왜 기다렸지?’
‘약속도 아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문제였나.’
하지만 곧 알았다. 문제는 ‘기다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있었다는 걸.
그 사람에게 “간다”는 말은 가벼운 정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동선, 그 순간의 계획.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문장.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신호처럼 들렸다. 마주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같은 공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같은 문장이, 서로 다른 온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긋난 것이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사람마다 말의 무게가 다르다는 걸. 어떤 사람은 약속처럼 말하고, 어떤 사람은 바람처럼 말한다. 붙잡을 수 없는 말, 흘러가는 말. 그걸 붙잡으려고 했던 내가, 조금 서툴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틀린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을 믿고 움직인다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발을 내딛는 일. 그건 어리석음이 아니라, 관계를 향한 작은 신뢰다. 나는 그 신뢰를 사용했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다만,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하나를 정했다.
확정되지 않은 말에는, 움직이지 않기로.
“간다”는 말은 참고로만 듣고,
“몇 시에 보자”는 말만 약속으로 받아들이기로.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이 기준 하나로 기다림의 모양이 달라졌다. 누군가의 말에 내 시간을 맡기지 않게 되었고, 내가 서 있을 자리를 내가 정하게 되었다.
기다림은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조건 없이 주어질 때 문제가 된다. 아무 기준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결국 나를 그 자리에 묶어두는 일이니까.
그날 나는 결국 공원을 떠났다. 더 이상 이유를 만들지 않기로 했고, 더 이상 의미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이렇게 현실적인 신호가 남는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메뉴를 시켰다. 숟가락을 들어 첫 입을 먹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까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김이 오르는 그릇 앞에서 천천히 식어갔다.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배가 부르면, 마음도 조금은 채워진다.
나는 그제야 웃었다.
50분을 기다렸던 내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는 상황이 조금 우스웠다. 그렇게까지 심각할 일도 아니었는데, 그 순간에는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기다린 건 내 선택이다.
말하지 않은 건, 그 사람의 방식이다.
그 둘을 섞어서 판단할 필요는 없다. 하나는 내가 책임지면 되고, 하나는 기억만 하면 된다.
다음에 또 누군가 “간다”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리고 내 갈 길을 갈 것이다. 만약 정말로 만나고 싶다면, 우리는 시간을 정할 것이고, 장소를 정할 것이고, 그때는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그게 약속이니까.
그날의 수봉공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이전의 나보다, 조금은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기다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아무 말에도 나를 세워두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