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다고 생각한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정다온은 평소와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오래전 이현이 데려갔던 카페가
그 언덕 어귀 어딘가에 있었던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카페는 없었다.
대신 한약방이 들어서 있었고,
전단지가 빼곡히 붙은 유리창 너머
낯선 기침 소리가 들렸다.
‘당연하지. 십 년이 넘었는데.’
그녀는 짧게 웃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느려졌다.
이현이 앞서 걷던 뒷모습,
유난히 짧았던 겨울 해,
바닥에 스민 커피 향이
갑자기 그날처럼 되살아났다.
머릿속에 없던 기억인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뛰고,
그리움이 아니라 당황이 먼저 찾아왔다.
'왜 지금, 왜 이 거리에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분명했다.
기억은 사라진 게 아니라
조용히 제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온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무거운 건 감정일까, 아니면
놓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가능성일까.
그때,
앞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휴대폰을 보며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이현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순간, 그녀는 돌아서려다
발끝을 제자리에 붙여뒀다.
따라가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돌아온다 해도,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으니까.
다온은 다시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졌고,
겨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돌아가는 길.
수없이 오가던 길이지만,
오늘처럼 낯설고 조용하게 흔들린 적은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기억이란 건 결국,
잊으려 할수록 더 정확한 길로
다시 나를 데려가는 것 같다고.
그날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기억은 내 발걸음보다 먼저,
그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늘도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너는 그를 따라간 게 아니라,
그와 함께 멈춰 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