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말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사라진다.
이현은 언제부터인가 예고 없이
사라지곤 했다.
처음엔 하루였다. 전화도,
메시지도 없던 날.
다온은 불안에 떨며 친구들에게 연락했고, 헌책방이며 사진관까지 찾아다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다.
“미안. 그냥 혼자 있고 싶었어.”
그 말에 안도했지만, 이상하리만큼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없이 사라지면 걱정돼.”
다온이 말했을 때, 이현은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럴 땐 말하는 게 더 어렵더라고.”
그의 목소리는 진심처럼 들렸고,
다온은 다시는 묻지 않기로 했다.
이현은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고,
보고 싶다는 대신 함께 찍은 사진을
책갈피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언제나,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다온은 그가 떠난 뒤에야
그가 세상을 어떻게 견디고 있었는지를
천천히 깨달아갔다.
비가 오는 오후였다.
다온은 오래전 함께 갔던 성북동 언덕길을
걷고 있었다.
벚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길, 그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걸었던 길.
그날도 이현은 말을 아꼈다.
“요즘은 그냥, 내가 투명해진 것 같아.”
그는 벚나무를 보며 그렇게 말했고,
다온은 무슨 의미인지 묻지 못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떠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라지고 싶은 기분.”
이현은 그렇게 말한 적 있었다.
그게 이별의 전조였다는 걸, 다온은
그가 사라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다온은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엽서를 꺼냈다.
손글씨는 여전히 삐뚤었고, 종이에는
눅눅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
> “그날의 네 눈을, 아직도 기억해.”
그 문장을 보고 또 봤다.
이현의 글씨였다.
마침표도 없고, 말줄임표도 없는
도중에 끊긴 문장.
그의 방식이었다.
언제나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사라지는 사람.
“미워할 수도 없어,” 다온이 중얼였다.
그의 부재는 무책임이 아니라,
끝내 말하지 못한 무력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온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현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골목을 따라,
조용히, 아주 오래된 발자국처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