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재난
폭풍은 분명히 지나갔다.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지고,
숨조차 삼키기 어려웠던 시간도 모두 지나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만은 알았다.
그날의 폭풍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았다는 걸.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은 괜찮잖아.”
“그래도 많이 좋아졌네.”
“시간이 약 이래.”
그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한 문장이 맴돌았다.
‘나는 아직, 그때를 살고 있어요.’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식 병명은 어쩐지 차갑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겐 그것이 단순한 진단명이 아니다.
그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평범한 날을 예고 없이 흔들어대는
‘조용한 재난’이다.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에서
문득, 그때의 소리가 귀를 때릴 때.
어떤 향기 하나에,
잊었다고 믿었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
나는 다시 그날의 한복판에 서 있다.
시간은 흘렀는데,
내 감각은 아직도 그 순간에 멈춰 있는 것처럼.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낮에는 이유 없이 가슴이 조여 오고.
사람들 틈에 있어도 혼자인 기분.
안전한 공간에 있어도 늘 도망칠 준비를 하는 나.
그 모든 이상한 증상들은
결코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나는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외면은 치유가 아니었다.
상처는, 그 자리를 인정하고 바라볼 때 비로소
조금씩 덧나지 않고 아물기 시작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나에게 말하려 한다.
괜찮다고,
너는 정말 잘 견뎌왔다고.
아직 무너질 수 없어서
그날 이후에도 살아내고 있는 너를
더는 미워하지 않겠다고.
PTSD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가 감당해 온 시간의 무게이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