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않는 줄 알았던 마음
그날 밤, 소녀는 잠들 수 없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눈꺼풀 안쪽이 이상하게 뜨겁고 먹먹했다.
쪽지를 읽고 나서 가슴 한구석이 오래도록 떨렸다.
“네가 아니었다면, 난 여기 없었을 거야. 구해줘서 고마워.”
그 문장 속에 담긴 건 단순한 감사가 아니었다.
그건 존재를 기억해 주는 유일한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따라,
소녀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고요하게.
가로등 하나 없는 밤길,
발밑에 부서지는 모래와 작은 풀잎이
귓가를 스쳤다.
손엔 작고 낡은 촛불을 들고 있었다.
소녀는 호숫가로 향했다.
자신이 몸을 던졌던 곳.
누구도 몰랐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날이
달빛 아래 조용히 피어 있었다.
가시나무 곁 언덕에 다다랐을 때,
소녀는 문득 멈춰 섰다.
거기,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달맞이꽃 한 송이가
숨을 죽인 듯 피어 있었다.
그건 말없이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괜찮아”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그 앞에 앉았다.
달빛은 얼굴을 비추고,
은빛 꽃잎이 미세하게 떨렸다.
소녀는 속삭였다.
“나도 피고 있었을까.”
말하지 않았을 뿐,
숨죽여 살아왔을 뿐,
사실은 피고 있었던 마음.
누구의 시선에도 들키지 않았던 작은 마음.
“누군가를 구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몰라.”
그 말은,
소녀가 살아오며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였다.
그 순간,
달빛이 더 환해졌고
달맞이꽃은 더 반짝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꽃,
그건 지금의 소녀와 닮아 있었다.
소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달맞이꽃 옆에 앉았던 자리에
살짝 남은 체온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천천히 되뇌었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나를 조금씩 피워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