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꿈속에서 연초는 날았다.

잊힌 마음의 날개

by Helia

그날 밤, 소녀는 늦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방 안엔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마음속엔 수많은 말들이 돌고 있었다.
다율이 남긴 쪽지 한 장이,
여전히 손끝에 남은 체온처럼 식지 않고 있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난 여기 없었을 거야.
구해줘서 고마워.’

그 짧은 문장이, 오래도록 소녀의 마음을 울렸다.
무언가를 구했다는 감각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마음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세상은 소녀에게 따뜻하지 않았으니까.

그날 밤, 소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낯선 꿈 속으로 들어갔다.


꿈속은 온통 안개로 가득했다.
공기조차 흐릿한 공간에서,
소녀는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하얗게 피어나는 연초를 보았다.

연초는 바람 없이 피어나
하늘로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곁에선 작은 씨앗들이 흩날리며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소녀는 그 꽃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아주 오래전,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

‘연초는 말 못 한 마음을 품는 꽃이란다.
누군가의 눈물이 그 잎에 닿으면,
꽃잎이 날개처럼 퍼져 하늘로 올라가지.’

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왠지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소녀는 손을 뻗어 연초를 만졌다.
그러자 연초는 흔들리지 않고 그녀의 손끝에 안겼다.
그 안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지지 않았던 건 아니야.”



그 문장은 너무 익숙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깊었다.
말하지 못한 것,
보여주지 못한 마음.
없던 게 아니라,
숨긴 것이었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연초에 닿자마자,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러자 연초의 씨앗들이 하나씩 솟구쳤다.
소녀는 그걸 바라보며 깨달았다.
그 연초는, 자신이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상처.
말하려다 삼켰던 말들.
누군가의 관심이 고팠던 날들.

그 모든 것이, 지금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연초 사이로,
자신보다 어린 소녀가 걸어왔다.
그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소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너야.
아무도 안아주지 않았던 너.
하지만 괜찮아.
이제는 내가 너를 안아줄게.”


꿈에서 깬 소녀는,
침대 위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손바닥이 이상하게 간지러웠다.
이불을 들추자,
그 속엔 작은 씨앗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연초의 씨앗이었다.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꽃의.

소녀는 손가락 사이로 씨앗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괜찮아.
말하지 못한 날들도,
사라진 게 아니라,
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니까.”

그리고 소녀는 알았다.
그 마음은, 지금도 조용히
날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