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조용한 경고
수학여행 마지막 날, 여전히 아이와 지혜는 따로 또 같이 움직였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밥도 거리 두며 먹었고,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하루를 흘려보냈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거리감이었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 아이들은 하나씩 아이를 향해 무심한 듯, 하지만 분명히 들리게 비난을 흘렸다.
“어제 잘 놀던 애가, 오늘은 아픈 척이래.”
“또 시작이지, 걔는 늘 그래.”
아이는 반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터득했다. 반응할수록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을. 사춘기 소녀들이 뭘 알겠어,라고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였다.
밤이 되자, 아이들은 이대로 잠들긴 아쉽다며 선생님들 몰래 준비해 둔 술을 꺼냈다. 손전등으로 불빛을 감추고, 담요를 둘러쓰고, 작은 캔 하나씩을 열어 서로의 마음을 기울였다. 누군가의 고백, 누군가의 울음, 누군가의 웃음이 섞였다. 그 무리에 지혜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이에게 술을 건네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이 역시 그 틈에 섞이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던 아이는 복도 끝에서 선생님들 무리가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문을 열고 방 안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선생님 오신다.”
그러곤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른 방향 복도를 향해 걸어 나갔다. 아이들은 그 말에 처음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또 한 번 괜한 말이나 하고 있다고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곧 문 앞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술 캔을 이불 아래 감추고, 입가를 닦고, 허둥지둥 자세를 고쳤다.
그제야 누군가 말했다.
“… 진짜였네.”
아이의 존재는 잊혔지만, 그 경고만큼은 짧게나마 그 밤의 위기를 비껴가게 했다. 아이는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펼쳐진 경주의 밤을 바라보았다. 조명이 닿지 않는 골목의 어둠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끼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 말을 해준 적 없었지만, 아이는 오늘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했다. 스스로에게조차 내주지 않았던 온기를 아주 조금만, 허락해 보기로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