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보지 말았어야 할 것

아이의 시선에 금이 간 순간

by Helia

“점심시간 끝나갈 때쯤, 이거 좀 교무실에 갖다 줘.”
국사 선생님은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선생님 책상 위에 그냥 두면 돼. 아무 말 안 해도 돼.”

아이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서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별일 아닐 줄 알았다.
하지만, 교무실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는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문은 살짝 닫혀 있었지만, 틈 사이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릴게요. 선생님…”
“아닙니다. 뭐, 아이를 위한 일이니까요.”

순간, 아이는 호기심보다 낯선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조심스레 눈을 가져다 댔다.
그 안에는 낯익은 얼굴 하나와, 낯선 얼굴 하나가 있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낮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그 앞에 서 있는 건 한 학부모였다.
정갈한 재킷에 하늘색 스카프, 머리는 단정히 묶여 있었다.
우아하고 깔끔한 차림새.
교실에서 보기 어려운 어른의 분위기였다.

그런 사람이,
그 단정한 손끝으로, 하얀 봉투 하나를
선생님 책상 위로 살포시 밀었다.
작은 봉투,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의 공기만은 유독 무거웠다.

아이의 숨이 멎는 듯했다.
들켜서는 안 될 순간을 훔쳐본 느낌.
그 장면은 한 폭의 정지된 그림처럼 박혔다.

그리고 아이는 문을 두드렸다.
“국사 선생님이 전해달래요.”
작게 말하며 손에 든 봉투를 내밀었고,
선생님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그걸 받았다.
“아… 고맙다.”

아이의 눈은 선생님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살짝 일그러진 눈매, 굳어진 입꼬리,
그리고 그 얼굴에 스친 미세한 경계심.

그날, 아이는 교실로 돌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있지만, 머릿속은 공허했다.
‘그게 뭐였을까.’
‘내가 잘못 본 걸까.’
‘아니, 분명 봉투를 건넸는데…’

무엇보다도 믿고 있던 어른,
아이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선생님’의
그 낯선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저 심부름을 했을 뿐인데,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걸 봐버린 기분.

아이의 세상은 그날 아주 조금,
믿음의 균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