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게

무더위 속에서 피어나는 마음의 성장

by Helia

여름, 너는 참 솔직한 계절이다.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던지듯 내 앞에 펼쳐지곤 하지. 햇살은 너그럽지도 사근사근하지도 않아. 한낮의 태양 아래선 누구도 태연할 수 없지. 이 계절을 지나는 모든 생명은 뜨거워지고, 땀을 흘리고,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여름이면 자주 멍해진다. 몸도 마음도 느려지고, 한없이 눅눅해진다. 하지만 네가 그런 시간을 허락해 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숨을 고르고, 느리게 걷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계절이라는 걸. 사람들이 바다로, 산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이유도 어쩌면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본능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여름은 낯선 곳에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불쑥 마주하는 감정들. 문득 지난 계절을 되돌아보게 하고, 다가올 가을을 막연히 기다리게도 하지.

그래서일까. 여름의 해는 길지만,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찰나 같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네 모습이 아쉬워, 나는 사진기를 꺼내 들곤 해. 흐드러진 수국과 물기 머금은 하늘, 노을이 드리운 골목길, 밤이 되어서야 서늘해지는 공기. 너를 붙잡고 싶은 마음은 매해 같지만, 결국 여름은 사진 속에만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를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오히려 밤이야. 낮 동안의 더위가 누그러지고, 모기향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함께 어둠이 내려앉을 때. 그때의 공기, 그 느긋한 시간 속에서 나는 유난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조금은 슬퍼지고, 괜히 누군가 보고 싶어지고, 이유 없이 외로워지기도 하지. 여름밤은 그 모든 감정을 조용히 안아주는 듯하다. 다른 계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실 여름, 너는 뜨거운 만큼 감수성이 깊은 계절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그동안은 그저 덥고 지치는 계절이라 여겼지. 하지만 너는, 많은 걸 태우고 나서야 무언가를 남기는 계절이더라. 마음속 한 자락도 그렇게 타고나면 새살이 돋듯, 여름을 지난 마음도 언젠가는 단단해진다.

그러니까 여름아, 올해도 나를 한 번 더 태워줘. 시원한 바람이 불지 않아도 괜찮아. 흠뻑 젖은 땀과 지친 숨결 끝에서, 나는 또 나를 만날 테니까. 작고 여린 내가 아니라, 한 계절을 통과한 뒤의 나를.

너는 매년 다녀가지만, 그때마다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란 걸. 그렇게 계절과 사람은 조금씩 변해가고, 그 변화는 때때로 여름 덕분이라는 걸.

그러니 부디, 무례할 만큼 다가와도 괜찮아. 나는 이제 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거든.
내 안의 여름도,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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