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억울함을 삼키는 밤

말이 되지 않는 일은 언제나 조용히 지나갔다

by Helia

그날 저녁, 소녀는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언니는 종일 거울 앞에서 치마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고, 새엄마는 마을회관 다녀온 이야기를 목청껏 풀어놓았다. 소녀의 움직임은 조용했고, 목소리는 오늘도 없었다.

"숟가락 하나 놓는 것도 느려터졌네." 언니가 말했다. 소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말이 오늘 처음 들은 것도 아니었고, 오늘만 들을 말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국을 떠 오더니, 말없이 소녀의 그릇에 국을 툭 붓듯 담았다. 땀 한 방울이 소녀의 손등에 떨어졌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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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난 후, 소녀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물은 차갑고, 손끝은 벌겋게 트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거실에서 언니가 엄마에게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귀걸이 말이야, 분명 내 거야. 그 아이가 어디서 주웠겠지."

그 말에 새엄마는 눈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귀걸이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았다며, 내일이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물소리에 묻히지 않을 만큼 숨을 내쉬었다. 그 귀걸이는 누가 준 것도 아니고, 어디서 훔친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남겨진, 어딘가에서 온 조용한 증거였다.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젯밤, 꿈을 꾸었고 그 아침, 바닥에 귀걸이가 있었다'는 말을 누가 믿을까? 설명해도 소녀의 말은 언제나 "그랬을 리 없잖니"라는 말로 지워졌다. 그러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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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졌다. 방 안엔 불이 꺼지고, 소녀는 이불속에 웅크린 채 혼자 생각을 되뇌었다.

"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걸까. 왜 나는 자꾸 참아야만 하는 걸까. 왜 나는...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걸까."

말은 끝까지 입 안에서 맴돌았다. 눈물이 목울대에 차올랐다가, 아무 데도 흘러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때였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유치원 시절, 누군가가 장난감을 망가뜨린 날.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선생님은 소녀를 불렀다. 아무도 네가 그랬다고는 안 했지만, 넌 늘 조용하니까, 혹시 실수했을 수도 있잖아? 그 말 앞에서 소녀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그때도 억울했다. 하지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안다. 그게 억울함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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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천장을 바라봤다. 달빛이 흐릿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 빛은 연초꽃의 잎처럼 희미하고 고요했다. 그 순간, 소녀는 또렷하게 자각했다. 자신이 억울하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지금껏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을 뿐, 억울함은 그녀 안에서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다.

소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말하지 못해도, 내가 느낀 건 사라지지 않아."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남기는 작은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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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창문을 열어보니 연초꽃 한 송이가 바람에 휘말려 안뜰에 내려앉았다. 한밤중에 핀 꽃은 희미한 은빛을 띠고 있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창을 닫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 밤, 소녀는 억울함을 삼켰다. 말로 하지 못한 마음은, 가슴속에 조용히 고여 다음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엄마는 소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귀걸이 좀 보자. 확인만 할게."

소녀는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펴며,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