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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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소녀는 유난히 일찍 깨어났다.
창문 너머 동틀 무렵의 하늘이
희끄무레한 안개처럼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깨지 않게 발끝으로 조심조심 걷고,
한기를 머금은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물에 닿은 손끝은 차가웠지만,
심장은 미세하게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가 살아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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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국을 올릴 즈음,
새엄마는 뚝뚝한 말투로 물었다.
“오늘은 왜 그렇게 조용히 움직였니?
또 무슨 일 꾸미는 거 아니지?”
소녀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바로 다시 시선을 내렸다.
“그냥… 일찍 깼어요.”
언니는 곁에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얘는 무슨 말을 해도 수상해.
말투부터가 뭔가 숨기는 것 같단 말이야.”
소녀는 말없이 국자를 내려놓았다.
숟가락 소리, 바느질 소리,
모두 평소처럼 이어졌지만
소녀의 마음속 어딘가는 작게 쿡, 하고 찔린 듯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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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나고
소녀는 곧장 뒷산 우물가로 향했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 발자국 소리는
혼자임에도 이상하게 덜 외로웠다.
우물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는 바구니 속 연초꽃을 꺼냈다.
노란빛이 수줍게 반짝였다.
어젯밤, 그녀는 창문을 열고 이 꽃을 손에 쥐며
다짐했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숨기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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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학교에 돌아와
교실 구석의 오래된 책장 아래에
작은 종이와 꽃을 놓았다.
종이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꽃을 봐주어서 고마워요.
그냥… 예뻐서 나누고 싶었어요.
혹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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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소녀는 창문 앞에 다시 선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번엔 바람이 불지 않았다.
방 안은 고요했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는 이불을 덮고
작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는 괜찮아.
나는, 내가 피어난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중이야.”
그리고 눈을 감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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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작은 소리가 창틀에서 들렸다.
마치 무언가 가볍게 내려앉는 소리.
소녀는 눈을 떴다.
조심스레 창문을 열어본다.
바깥은 어둡고 조용했지만,
창틀 위엔 낯익은 향기가 스쳤다.
또 다른 연초꽃 한 송이.
이번엔 그녀가 두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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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얼어붙은 듯
꽃을 내려다보았다.
그 아래엔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심장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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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소녀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바람이 방 안을 스칠 수 있도록
작은 틈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 꽃이 누구에게서 온 것이든—
그 마음은 언젠가, 그녀의 것처럼 피어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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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른다.
그 종이 속에 어떤 말이 적혀 있었는지.
그리고 그 말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꾸기 시작할 거란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