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가시나무와 함께 피어난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피워낸 것들

by Helia

아침 공기는 서늘했고, 소녀는 여느 때처럼 부엌에 서 있었다. 식탁 위에는 반찬 몇 가지와 국이 조심스레 차려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새엄마는 신문을 넘기며 혀를 차고 있었고, 언니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하품을 했다.

"귀걸이 말인데, " 새엄마가 입을 열었다. "어제 경찰서에 전화했더니, 잃어버린 물건은 접수해둬야 한다고 하더라.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 생기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가 흘깃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 귀걸이 어디서 났다는 거야? 분명히 내 거랑 똑같던데?"

그 말에 소녀는 입을 열고 싶었다. 정말로,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은 굳게 잠겨 있었고, 말은 늘 그렇듯 이빨 뒤에 숨어버렸다.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쥐고 있던 귀걸이를 내밀었다.

"그럼 맞는지 확인해 보자, " 새엄마가 다가오며 귀걸이를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언니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아니, 진짜 내 거야. 이거 한쪽 잃어버린 줄도 몰랐네."

그렇게 귀걸이는 다시 언니의 것이 되었다. 아무도 소녀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미안하다는 눈빛 하나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가 그걸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처럼 여겨졌다. 누가 줬는지, 어디서 났는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가 길게 늘어졌다.

소녀는 묵묵히 설거지를 하며 물속에 손을 담갔다. 아직도 손끝은 차가웠고, 마음속엔 무언가 뾰족한 감정이 박혀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 말로 옮기지 못하는 서러움,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외로움.

그날 오후, 소녀는 학교가 끝난 뒤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마을 끝자락, 아무도 가지 않는 오솔길 끝엔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그곳에만 가면 왠지 마음이 가라앉았고, 세상의 소음이 조금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우물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소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느리게 흘렀고, 바람은 조용히 숲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젯밤, 꿈속에서 그녀는 어떤 나무를 보았다. 잎은 시들어 있었고, 줄기에는 온통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런데도 그 나무 곁엔 작은 꽃이 피어 있었는데, 환하게 웃고 있는 듯 보였다. 그 꽃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왜 그런 곳에 피어난 걸까.

소녀는 그 꿈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 가시나무였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고, 그저 뾰족한 감정들만 툭툭 내보이며 버텨온 시간.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자신 곁에 조심스레 앉아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것이 바로 희망일까.

밤이 되었다. 달은 또다시 희미한 은빛을 비추고 있었다. 소녀는 이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귀걸이가 있던 자리에, 이제는 말 한마디 없는 빈 공간만이 남아 있었다. 그 자리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내가 느낀 건, 사라지지 않아.”

그녀는 다시 중얼였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작은 씨앗이 움트는 듯했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이해였고, 언젠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조용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창밖에서 또다시 연초꽃이 떨어졌다. 이번엔 그녀가 먼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꽃을 손에 쥐었다. 가시에 찔릴 수도 있었지만, 이번엔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억울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음은 조금 더 자신이 되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피워낼 말들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달할 거라는 것을.

그 밤, 소녀는 처음으로 눈을 감으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시나무 곁에 핀 달맞이꽃처럼, 그녀는 이제 자신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