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에는 말들이 쌓여 있었다.
햇살이, 생각보다 일찍 커튼 틈으로 밀려들었다.
정다온은 벽에 기대앉은 채 잠들어 있었고, 창밖의 빗소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어젯밤 내내 창문을 향해 앉아 있었다.
흘러간 시간을 껴안은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어딘가 균열이 일어난 듯했다.
‘오늘은, 창문을 열자.’
이유 없는 확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아침이었다.
그녀는 묵직한 몸을 일으켜 커튼을 걷고,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바깥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비 온 뒤 특유의 흙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낯선 사람들의 대화.
모든 것이 생경하고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낯섦이 좋았다.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서.
책상 위엔 아직 덜 마른 노트가 놓여 있었다.
“사라졌지만, 한 번도 널 놓은 적은 없어.”
그 문장을 수없이 되뇌던 시간.
이제는 그 말조차, 다온을 붙잡아두지 못했다.
“그만 놓아줘야겠지. 나도 너도.”
그녀는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였다.
말라붙은 화분에 물을 주고, 벽에 기댄 액자를 곧게 세웠다.
마음속도 그렇게 정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흘렀지만, 정리는 언제나 마음이 먼저다.
그때,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한 통의 메시지.
“다 온아, 다음 주 동기전시 열려. 너도 한번 보러 와. 오랜만에 얼굴 보자!”
오래된 이름이 화면 위에 떠 있었다.
마음이 살짝 일렁였다.
‘이젠 괜찮을지도 몰라.’
그녀는 서랍에서 좋아하던 향수를 꺼냈다.
손목에 톡, 귀 뒤에 살짝.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나를 위해 나가 보자.”
그는 여전히 마음 한편에서 살아 있었다.
하지만 다온은, 그 기억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밀이 머물던 방,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뿌리내린 공간에도
언젠가 햇빛은 스며든다.
그녀는 천천히 커튼을 걷고 문을 열었다.
빛은 아직 약했지만, 분명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