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말할 수 없는 기분의 이름

by Helia

우울은 조용히 찾아온다. 벨도 울리지 않고, 인사도 없다. 어느 날 문득, 아침 햇살이 무색하게 느껴지고, 커피의 쓴맛이 유난히 오래 남는 그 순간, 나는 알아차린다. ‘아, 왔구나.’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지.” 하지만 우울은 그런 단순한 기분과는 다르다. 그것은 마치 낡은 외투처럼 몸에 착 감기고, 벗어내려 할수록 더 깊숙이 스며든다.

우울할 때면 세상이 희미해진다. 소리는 멀어지고, 색은 흐려진다. 친구의 안부 메시지도, 드라마 속 유쾌한 대사도, 어쩐지 나를 향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같은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다. 마치 젖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하루를 견디는 기분. 너무 사소해서 누구에게 꺼내 말하기도 애매한 감정들이 내 안을 차지하고, 그러면서 나는 점점 무거워진다.

사람들은 우울이 ‘이유 없는 감정’이라 말하지만, 나에겐 분명 이유가 있었다. 작고 소소한 상처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결국 마음속 어딘가가 무너진다. 무심한 말 한마디, 차가운 시선 하나, 지나치듯 들은 말들이 진흙처럼 가라앉는다. 그래도 겉으로는 웃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고, 사는 척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척들이 쌓일수록 나를 더 멀리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조차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왔다. 무기력이라는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이유를 찾는 것조차 지쳐버렸다. 누군가 “도와줄게”라고 말해도, 그 말조차 믿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구해내야 한다는 묘한 강박에 시달리며, 그러면서도 구할 힘조차 없는 현실 앞에 절망했다. 혼자라는 감각은 상상보다 더 날카롭고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계절처럼, 물처럼, 느리지만 분명히 흘러갔다. 어느 날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그 어두운 물 위에 조용한 파문을 남긴다. 오래 듣지 않았던 음악을 우연히 다시 듣는다든가, 창밖 하늘이 유난히 예쁘게 느껴진다든가. 식어버린 커피를 다시 데워보는 것처럼, 그렇게 일상의 감각들이 조금씩 돌아온다.

나는 이제 안다. 우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감정이고, 삶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숨을 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가끔은 울어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다.

우울은 나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시 나를 돌아보게 만든 감정이었다. 언젠가는 웃을 수 있겠지, 하며 하루를 견뎠던 날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같은 감정과 홀로 싸우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그걸, 절대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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