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말하고, 나만 다가갔던 시간
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지어도, 어떤 말로 건넸어도,
너는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내 말이 끝난 뒤에도, 내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저 가만히, 무표정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건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니라, 나를 지치게 하는 침묵이었다.
무관심인지, 무력함인지, 아니면 무시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드는
너의 그 말 없는 태도는, 내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다렸다.
너도 나처럼 생각이 많을 거라고,
말을 고르고 있을 거라고,
조심스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만 말하고, 나만 설명하고, 나만 자꾸 다가갔다.
그런 너를 이해해 보려 애썼다.
혹시 상처받은 적이 있었는지,
사람들과의 대화가 두려운 건 아닌지,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너의 침묵을 너의 방식이라며 수없이 합리화했다.
그런데 너는,
내가 다가가는 것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안아주길 기대하는 듯한.
그 조용한 기대가 나를 점점 무너지게 했다.
너는 왜, 말을 안 했니.
네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너무 알고 싶었는데.
너의 입에서 들리고 싶었는데.
네가 하지 않은 말들 사이에서
나는 수없이 나 자신을 오해했고, 의심했고, 깎아냈다.
말하지 않는 사람과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내 마음을 홀로 짊어지고 자꾸 물속으로 잠수하는 일과 같았다.
숨이 차오르는데, 너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점점 가라앉았다.
그런 순간이 많았다.
너는 침묵했고, 나는 혼자 말했고,
그 말들이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때쯤,
우리 사이엔 감정 대신 피로만 남아 있었다.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네가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걸 기억한다.
좋아했다면, 단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웠다면, 그저 ‘보고 싶다’고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말은 때로 너무 쉬워서,
가벼워서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너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가벼운 말조차 내게 건네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제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너는 너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니다.
이제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내 감정을 존중받는 관계를 원한다.
침묵을 견디는 일이 사랑이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너에게 묻지 않을 거야.
“너는 왜, 말을 안 해?”
그 질문은 너에게 닿지 않았고,
이제는 나에게도 중요하지 않아 졌으니까.
대신 나는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을 들어줄 사람과 살아가기로 했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