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허해서 그런가, 헛것이 보이네

내가 흘리고 다닌 것들

by Helia

요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들쑥날쑥 이었다. 그 때문일까. 몸이 가벼운 게 아니라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눈은 떠 있는데 초점은 흐리고, 가끔씩은 내가 나를 밖에서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오늘 아침, 거실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아무도 없을 시간인데, 누군가 스르륵 내 앞을 지나간 것 같았다.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는데, 돌아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엔 그저 착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식탁 위에 분명 놓지 않았던 컵이 있었고,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기상 시간이 되어 있었고, 방금까지 들고 있던 책이 소파 한편에 내려져 있었다.

처음엔 무서웠다. 하지만 점점, 그 존재가 나보다 덜 지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헛것은 내가 흘린 것들을 주워 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흘리고 다닌 체온, 감정, 말, 하루치의 피로 같은 것들. 나는 매일을 버티느라 조금씩 나를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헛것은 그 잔해들로 만들어진 나의 또 다른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허하면 귀신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미신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 말이 은유적으로 느껴진다. 몸이 허하다는 건 단순히 체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이 지치고, 감정이 건조하고, 아무도 내 안부를 묻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안의 그림자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나를 놀라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내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그 헛것은 무섭지 않았다.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부를 물어준 것 같았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허해서 보이는 게 아니라, 허하기 때문에 마주해야 할 감정이기도 했다.

몸을 채우는 건 단지 음식이나 휴식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친구의 침묵. 그런 것들이 모여 다시 나를 살아 있게 만들고, 헛것이 아닌 나로 돌아오게 하는 것 아닐까.

오늘은 따뜻한 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다시 채워야지. 언젠가 헛것이 아니라, 분명한 내가 나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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