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나로 살아가는 것

흩어지지 않기 위해 쓰는 문장

by Helia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지?’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하면 말이 막히고, 거울을 들여다봐도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열고, 커서를 깜빡이게 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 생각, 기억, 상상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종이에 내려앉는다.
때론 그게 너무 날 것 같아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진짜 ‘나’로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살면서 수없이 타협하고, 침묵하고, 모른 척했던 말들.
억눌렀던 감정과 흘려보낸 표정들.
그 모든 것들이 글 속에서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말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데려와,
‘지금의 나’와 마주 앉히는 일.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어릴 땐, 글은 잘 써야 하는 줄만 알았다.
좋은 표현, 근사한 문장, 남이 감탄할 만한 내용.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글은 잘 쓰는 것보다 ‘진짜로 쓰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직하게 옮기는 글.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나로 있는 시간을 온전히 담은 글.
그게 내가 믿고 싶은 글쓰기다.

나는 글을 쓰며 내 마음의 거처를 마련해 왔다.
현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던 감정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닐 기억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머무는 이야기였기에.
세상에 꺼내놓을 수 없었던 것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길어 올릴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되어갔다.

글을 쓴다는 건, 늘 쉽지 않다.
마주하기 싫은 나를 들여다보아야 하고,
때론 꾹 눌러왔던 슬픔이나 후회, 부끄러움도
직시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쓰는 건
글을 쓰는 일이 곧
나를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말한다.
"요즘 너무 바빠서,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
그럴 때 나는 글을 쓴다.
시간이 나서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라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인지,
어떤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잊지 않는다.

누군가는 글을 소통이라 말하지만
나는 글이 먼저 ‘돌아봄’이라고 믿는다.
내가 내 안을 향해 돌아서고,
한없이 조용한 마음의 중심에 닿는 일.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문장은,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로 시작된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순간.
그때 글은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로 살기 위해서.
세상이 흔들리고, 나도 흔들릴지언정
이 문장만큼은 내 안에서 나온 진심이라는 것을 믿으며.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붙잡는 일이다.
흩어지지 않게, 사라지지 않게,
나로 살아가기 위한 단단한 증거 하나.
그게 바로 글이고,
그 글을 쓰는 내가
진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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