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침묵의 증언

누군가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by Helia

의뢰인은 손에 쥔 낡은 서류봉투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아진이 받아 든 봉투 안에는 바랜 메모지 한 장과 얼룩진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은 오래된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힌 듯, 흔들리고 흐릿했다. 배경은 병원 대기실.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병원의 간판 일부가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끈 건 사진 속 구도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카메라는 그녀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손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찍혀 있었다.

"이건, 누가 찍은 거예요?"

아진이 묻자, 그녀는 잠시 시선을 피하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기억나지 않아요. 가방 안에 들어 있었어요. 깨어나고 며칠 후에야 확인했어요.”

사진 속 그녀는 또렷한 이목구비에, 주름 하나 없는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것이 이상했다. 지금 그녀는 이미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병원에서는 그녀가 방문한 기록조차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사진은 분명히 병원에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아진은 메모지로 시선을 옮겼다. 종이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다소 급하게 눌러쓴 듯 적혀 있었다.

“기억을 잃지 마세요. 당신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누가 쓴 거 같아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걸 본 순간, 손이 덜덜 떨렸어요.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진짜 존재했다는 느낌이 확 밀려와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메모지를 접으며 손끝으로 몇 번이고 종이를 쓸어내렸다.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기억과 함께, 뭔가 남은 게 더 있을 수도 있어요. 혹시… 그날 이후에, 외부에서 연락받은 적은 없었나요?”

“있었어요. 이름 모를 번호로, 딱 한 번. 받자마자 끊겼어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누가 제 이름을 불렀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릴 적 엄마가 부르던 말투 그대로요.”

아진은 메모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보드에 조심스레 붙였다. 이제, 퍼즐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맞춰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지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녀를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민호 씨, 병원 건물 구조 다시 확인해 봐요. 특히, 지하 쪽.”

“지하요?”

“응. 병원 도면에는 표시돼 있었는데, 정작 층별 안내판엔 빠져 있었어. 실제로 존재하는지, 접근이 가능한지 조사해 봐요. CCTV도 마찬가지. 정보가 빠졌다면, 누군가 고의로 지운 거야.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의료사고가 아니야.”

아진은 모니터를 켜고 새 문서를 열었다. 사진 속 병원 간판의 한 글자가 눈에 밟혔다. 지워진 글자, 비껴나간 흔적. 그 흔적이 어쩌면, 지금까지 감춰진 통로일지도 몰랐다.

이 사건은 이제,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닌 존재 자체를 둘러싼 수수께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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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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