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라진 층, 지하의 존재

존재를 지우는 건물

by Helia

병원 건축 도면을 다시 펼쳐놓은 아진은,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선을 따라갔다. 도면에는 분명히 'B2'라고 표기된 층이 있었다. 전기 설비실, 직원 휴게 공간, 그리고 '보안구역'이라는 정체불명의 공간. 그러나 병원의 층별 안내도와 홈페이지, 심지어 정부 기관의 건축 등록 문서 어디에도 그 층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병원, 지하 2층이 있다고 했죠?”

아진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민호가 노트북을 돌려 보여주었다. “맞아요. 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지하 1층까지만 사용 중이라고 돼 있어요. 병원 홈페이지에도 없고, 보건복지부 자료에도요.”

아진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면이 진짜라면, 우리가 봐야 할 건... 현장이야.”

도면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혹은 도면만이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다음 날 아침, 아진과 민호는 의뢰인이 기억을 더듬어 지목한 병원을 찾았다. 외관은 익숙하고도 무난했다. 입구를 지나 접수대를 지나며 직원들은 별다른 경계 없이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아진은 미세한 이질감을 느꼈다. 직원들의 표정은 친절했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웠고, 몇몇은 그들의 존재를 스치듯 힐끔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순간, 그녀는 버튼 패널을 유심히 살폈다. 'B2' 버튼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하 1층 아래로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복도 끝에는 철제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만 유일하게 전자키로 잠겨 있었다. 손잡이에는 사용 흔적이 거의 없었고, 작은 경고 스티커 하나만이 바래진 채 붙어 있었다.

“여기, 이상하지 않아요?” 민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이 병원, 한 달 전에 CCTV를 전면 교체했대요. 설치한 지 1년도 안 된 장비를요.”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건 누군가, 뭔가를 지우고 싶어 했다는 뜻이야.”

병원 창밖을 바라본 아진의 눈에, 간판이 들어왔다. 의뢰인이 내민 사진과 동일한 위치, 동일한 창문 구도. 세세한 디테일까지도 정확히 일치했다. 그녀는 확신했다. 의뢰인은 분명 이 병원에 왔다. 그리고 이 병원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퇴근 시간 이후 병원 주차장 지하에 다시 잠입했다.

민호는 구조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도면 상으론 지하 1층 후문 쪽, 여기가 통로일 가능성이 있어요.”

후문 벽면은 평범한 흰색 타일로 마감되어 있었지만, 민호가 손끝으로 벽을 두드리다 멈췄다. “여기... 울림이 달라요.”

아진은 그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철제 커버가 덧대어진 부분이 있었고, 가장자리에 흠집과 긁힌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가 한때 여기를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철저히 가려놓은 듯했다.

민호가 조심스럽게 커버를 젖히자, 그 안엔 좁고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손전등을 켠 아진이 통로를 들여다보았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거미줄이 희미하게 실을 뻗고 있었다. 오래도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이곳을 봉인해 둔 것이다.

“가보자.”

말은 단호했지만, 아진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향하는 계단. 안개처럼 희미했던 의혹들이 이 아래에서 현실로 증명될 수도 있다는 불안. 발끝에서부터 등뼈까지 차가운 기운이 타고 올라왔다.

계단은 생각보다 깊고 가팔랐다. 벽에 기대며 조심스럽게 내려간 끝, 낡은 금속문 하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문 위엔 '내시경실'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지워진 채 남아 있었다.

민호가 문고리를 잡았다.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문 너머로부터 느껴졌다.

"열까요?"

아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자, 형광등 불빛이 깜박이며 차가운 실내를 밝혔다. 그곳은 내시경실이 아니었다.

의료 장비와 관찰 모니터, 수술대와 구속용 의자, 그리고 천장에 달린 카메라까지. 마치 감시와 실험이 동시에 이뤄졌던 공간처럼.

방 한쪽, 금속 캐비닛이 줄지어 서 있었다. 겉면은 결로로 인해 얼룩져 있었고, 손잡이 부분은 녹이 슬어 있었다.

민호가 낮게 속삭였다. “이건... 냉동 보관함이에요.”

아진은 말없이 숨을 삼켰다. 이 병원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치밀하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이 사건은 이제, 단순한 의료 기록 조작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조작하는 시스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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