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묶인 곳에서, 끝내 살아 나가리라

by Helia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나가리라.”

그 문장을 들은 날, 나는 조용히 무너졌다. 무슨 말인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튕겨 나오는 메아리처럼 반복되었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했고, 눈을 감아도 그 가사가 맴돌았다. 내가 말하지 못한 것, 표현하지 못한 것, 다 삼켜버리고 괜찮은 척 살아온 날들이 그 짧은 구절에 다 녹아 있는 듯했다.

MC 스나이퍼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나에게 노래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시였고, 선언이었으며, 견딜 수 없을 만큼 조용한 절규였다. 고요한 선율 위에 얹힌 그 낮은 목소리는 무기력한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너, 아직 거기 있느냐고. 너, 끝내 살아 있느냐고. 너, 이 감정의 감옥에서 나올 준비가 되었느냐고.

나는 늘 무언가에 묶인 채 살아왔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애써 밝게 웃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져야 했다.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 것. 울고 싶어도 참을 것. 힘들어도 견디고, 아무 일 없는 척 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숙이라 배웠고, 나는 그게 맞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상해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불 꺼진 방 안, 새벽 세 시의 고요 속에서 나는 자주 무너졌다. 특별히 슬픈 일도 없었고,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도 눈물이 났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 안에 쌓인 침묵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하지 못한 슬픔, 꺼내지 못한 분노, 들켜선 안 되는 상처. 그것들이 조금씩 내 안에서 자라났고, 어느 순간부터 나를 눌러왔다. 나는 그 사실을 이 노래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진실은 침묵을 싫어해. 말없이 가면 더 아픈 법이야.

이 가사는 내게 진실을 말할 용기를 건넸다. 나는 그동안 너무 오래 침묵해 왔다. 나도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고, 나도 사랑받고 싶었고, 나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늘 목구멍 어귀에서 멈췄고, 대신 괜찮다는 말로 포장되어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는 내 진심을 외면한 채 살아왔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는 단지 위로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부정당한 감정들, 사회가 외면한 고통들, 말하지 못한 진실들에 대한 집요한 회복의 노래다. 이 노래는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네가 잊은 너 자신은 어떤 모습이냐고. 그리고 다시금 고개를 들라 말한다. 고개를 숙이고 사는 게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이 노래는 조용히 등을 떠민다.

‘솔’은 늘 푸르다. 사계절 내내 한결같이 푸르다. 바람에 흔들려도 쉽게 꺾이지 않고, 눈이 내려도 묵묵히 견뎌낸다. 그 푸르름은 외로움이자, 존엄이다. 이 노래 속 ‘솔’은 단지 식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가까운 존재다. 그것은 꺾이지 않는 내면이고, 침묵 속에서도 살아 있는 생명이고, 잊힌 존재들의 상징이다. 나는 그 ‘솔’이 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오래 흔들리다 보니 내가 푸르른 줄도, 내가 서 있는 줄도 잊고 있었을 뿐이다.

살아서 나가리라.

이 짧은 문장은 마치 주문처럼 마음속을 울린다. 살아남겠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숨 쉬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은, 부당하게 묶여 있는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다. 누구에게도 해명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저 묶였던 자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일. 그것이 이 노래가 말하는 진짜 ‘살아서 나가는’ 일이었다.

나는 수많은 감정에 묶여 있었다. 나를 작게 만든 말들, 오래된 상처, 외면당한 감정,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만든 한계에. 그 감정의 창살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정교했고, 너무 오래 그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스스로 그게 나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든 이 창살에서 벗어나야겠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꺼내야겠다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나에게 그런 용기를 주었다. 누군가에게 이 노래는 광주의 기억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청춘의 분노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노래는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살아 있으라는 것. 기억하라는 것. 그리고 너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는 것.

우리는 모두 푸르른 솔 한 그루를 마음속에 품고 산다. 상처받았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는 존재. 그건 때때로 지치고, 무너지고, 쓰러지지만, 완전히 꺾이지는 않는 마음이다. 나는 그 푸르름을 믿고 싶다. 내가 아직 그런 존재라는 것을, 나도 여전히 살아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노래처럼 나도 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나는 살아서 나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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